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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2025년 3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여성독립운동가 열전 역사가 오래된 나의 한반도야 내 선조와 유적을 볼때에 너를 사모함이 더욱 깊어진다 한반도야 - 차경신 ‘한반도 가운데서’ - 이는 일제강점기에 일본 유학을 마치고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활동하 다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으로 생을 마감한 여성독립운동가 차경신(1892~1978) 지사가 쓴 시다. 이 시는 차경신 지사의 동생 차경 수가 ‘경신 언니가 죽고 나서 유품을 정리’ 하여 쓴 《호박꽃 나라사랑》 (1988)에 실려있다. “언니(차경신)와 어머니(박신원)가 독립운동하는 것을 알아차린 왜경 은 어머니의 뒤를 조사하여 체포하려 하였다. 어머니는 친척 집 곳간 독 뒤에 숨어서 햇빛도 못 보고 나타나지 않았으며 이웃이라도 알까봐 몰 래 음식을 갖다 드렸다.(가운데 줄임) 집주인이 외출하자 왜경들은 우르 르 고씨 집안으로 들어가더니 손에 잡히는 가구를 마당으로 가지고 나 와 불을 질렀다. 그리고는 어머니를 불에 태워 죽이려고 필사적으로 저 일본·중국·미국을 종횡무진하며 광복을 향해 뛴 “차경신” 일본 유학도중 1919년 2 · 8독립선언 참여 고향 선천에서 3 · 1운동 주도 후 상하이 망명 차경신 지사는 1919년 11월 대한청 년단연합회 총무 겸 재무로 뽑혀 중 국과 조선을 드나들며 독립자금을  모금하였다. 이듬해 8월, 상하이 임 시정부로 건너가 국내를 오가면서  비밀요원으로 활약했다. 1921년 9 월 정애경·최윤덕 등과 여자연합단  대표로 임시정부에 자금을 지원하였 다. 1924년 1월 미국으로 건너가 초 대 대한애국부인회 단장과 대한인국 민회 회원으로 독립운동을 지속하 였고, 로스앤젤레스에 한국어 학교 를 설립하여 초대 교장으로 교포 자 녀들의 교육에 진력하였다. 1937년  6월에는 애국부인회 총단 임원으로  중국의 항일전쟁 재난민과 부상병  등을 돕기 위한 의약품을 중국군에  지원하였다 . 대한애국부인회 단장, 대한인국민회 회원 활약 남편 박재형과 함께 미주지역 독립운동 앞장 글 이윤옥(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