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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2024년 6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교를 졸업한 뒤, 기병(騎 兵) 중위로 복무하던 중 1919년 3·1 운동이 일어 나자 육군사 관학교 동창 생인 이동천 (李東天)·지 청천(池靑天) 과 함께 6월 에 남만주(중 국 동북지방) 의 서간도로 망명하였다. 이후 신의주 건너편의 안동현(安東縣, 현재 丹東시)에서 안병찬(安秉瓚)이 창설한 독립운 동단체인 대한독립청년단에 가입하여 활동 하였다. 그러나 1919년 8월 총재 안병찬이 체포되 자 서간도 유하현(柳河縣)에 있는 신흥무관학 교에서 교관으로 활동하다가 이듬해 초 무기 를 구입하기 위해 러시아 연해주지방으로 이 동하였다. 1920년 3월에 러시아혁명의 와중에 러시 아 적군(赤軍)과 연합하여 반혁명군인 백위군 (白衛軍, 일명 백군) 및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 다. 그러나 강력한 세력을 갖춘 이들의 군사 력에 밀려 연해주의 수찬(현재의 파르티잔스 크)으로 퇴각하던 중 한인 동포들을 괴롭히 던 중국 마적들을 소탕하였다. 이때부터 시 베리아에서 명성을 얻어 동포 사이에서 ‘김 장군’이라 불렸다. 한편 러시아 연해주 수찬에서 마적을 섬멸 한 뒤 동포들의 안정된 삶을 위해 한 때 군정 과 민정(民政)을 실시했으며, 1921년 봄 수 찬의 인접 지역인 올가에서 한인 통합빨치산 (의용병, 의병) 부대 건립에 동참하고 사령관 이 되었다. 이 해 9월 러시아 혁명세력 빨치 산 부대의 제의에 따라 수찬의병대의 일부를 부근의 올가항에 보내고 나머지 대원들은 아 누치노로 이동시켰다. 같은 해 10월 러시아 적군과 연합하여 수찬 의 백위군과 전투를 벌였지만 패하여 이만 지 방으로 이동하였다. 1922년 1월 이만에서 다 일본군 장교로 재직이던 1916년 일본 도쿄에서 임신중인 아내 유정화와  함께 찍은 사진  김경천이 러시아혁명 전쟁의 와중에 러시아 적군(赤 軍) 편에서 싸웠던 경험담을 서술한 기고문 「氷雪싸힌  西伯利亞(시베리아)에서 紅白전쟁한 실지 경험담」을  게재한 『동아일보』 기사(1923.7.29, 국사편찬위원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