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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2024년 5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그 후 송학선은 그 같은 반일의식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고자 하였다. 그토록 흠모해 오던 안중근과 같은 거사를 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 대상으로 조선 총독을 목표로 삼 았다. 총독을 제거함으로써 우리민족을 억압 하는 일제에 투쟁하는 것을 보여 주고, 나아 가 우리의 독립의지를 대외적으로 알리고자 하였다. 그런데 순종(융희황제)이 1926년 4 월 26일 붕어하였다. 이날 장사를 나갔던 송 학선은 장충단에서 순종이 붕어했다는 소식 을 듣고 장사물품을 팽개치고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창덕궁으로 달려갔다. 순종 붕어 후 빈소 마련된 창덕궁 금호문 앞 에서 칼을 품고 총독 기다려 순종이 돌아가신 후 빈소가 마련된 창덕 궁 금호문 앞에서 칼을 품고 조선 총독을 기 다려 총독을 처단할 것을 결심해 온 송학선 에게 그 기회가 찾아왔다. 순종의 빈소는 창 덕궁에 마련되었고, 빈소의 출입문은 창덕궁 의 서남문인 금호문이었다. 송학선은 그 문 을 통해 조선총독부의 고관들이 출입하는 것 을 보게 되었다. 문득 이곳으로 총독도 들어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곳에 조선총독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판단하고 창 덕궁 돈화문 앞에서 호곡을 하며 기다렸으나 허사였다. 일제 당국은 순종이 붕어하자 3 · 1운동 때 와 같은 거사로 발전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었다. 그래서 4월 27일부터 서울시내의 경 찰병력을 증강하기 위해 인천·파주·수원·개 성 등의 경찰까지 출동시켰다. 그리고 돈화 문 앞에 임시 경비사령부를 설치하고 경찰은 물론 기마순사(騎馬巡査)와 헌병까지 포진시 켜 삼엄한 경계를 폈다. 그리고 이튿날인 28 일에는 다시 경찰 교습생까지 동원하고 새로 권총 1백정을 배부하는 등 비상경계를 강화 하였다. 금호문 나오는 무개차 속의 일본인을 ‘사이 토 총독’으로 오인, 거사 실행 송학선은 조선총독을 처단하기 위해 4월 27일에도 창덕궁 앞에서 사이토가 오기를 기 창덕궁 금호문(왼쪽) 앞 송학선 의거지(독립기념관 제공) 창덕궁의 서문인 금호문(金虎門)의 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