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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순국선열 • 김경천 선생 67 김경천의 생애와 만주 · 연해주 항일무장투쟁 어렸을 때의 이름(아명)은 김현충(金顯忠), 본명은 김광서(金光瑞)이고 김응천(金應天)이 라고도 불렸다. 1888년 6월 함경남도 북청 에서 대한제국 때 군기창장(軍器廠長)을 지낸 김정우(金鼎禹)의 5남 1녀 중 막내아들로 태 어났다. 1911년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 육군사관학 핵심공적 일본군 장교로 복무하다가  1919년 서간도로 망명, 신 흥무관학교 교관으로 독립 군 양성에 주력했다. 이듬 해 연해주로 망명한 뒤 니 항(尼港)전투에 참가하여  일본군 및 러시아 백군(白 軍)과 싸웠다. 1922년 10 월에는 스찬(蘇城)에서 고 려혁명군 동부사령관으로  백군 및 대일항전을 전개 하였다. 주요약력 ● 1888년 6월 5일 함경도 북청에서 출생 ● 1911년 5월 일본 육군사관학교 졸업  ● 1919년 6월 서간도 망명, 이후 신흥무관학교 교 관 등 ● 1920년 3월 연해주 망명, 독립군 · 러시아 적군(赤 軍)과 연합, 니콜라예프스크(니항)에서 일본군 · 러시 아 백군과 전투 ● 1921년 초 연해주 수청 고려의병대(일명 창해독 립단) 사령관   ● 1923년 2월 중국 상해 국민대표회의에 참가 ● 1926년 블라디보스톡에서 민족당 주비회(籌備 會) 조직 ● 1936년 9월 29일 소련 원동지방 국경수비대 군 법회의 3년형 선고 ● 1942년 1월 2일 소련 북동부 아르항겔스코에주 에서 사망 ■ 건국훈장 대통령장 김경천 선생 일본 육사 출신 독립군 사령관 신흥무관학교 교관으로 독립군 양성, 무장투쟁 전개 “조선의 유지청년이 노령에 수천수만이 출입하였으 나 김장군 같이 위대한 공적을 성취한 사람은 없나 이다. 김군이 노령에 들어오면서 경천이라 개명하였 으므로 노령에서는 김광서(金光瑞)라는 본명은 알지  못하고 경천 김장군이라면 내외국인이 별로 모르는  이가 없나이다.” - 나경석이 1922년 1월 24일자 『동아일보』에 연재 한 「노령견문기」 중에서- 글 편집부 연해주지방에서 무장 독립운동 러시아 백위군 · 마적과 싸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