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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으로 이봉조 총무장 박경순 재무 박봉열 이규신이 선임되었다. 이후 수차에 걸쳐 대구와 공함을 주고받았으며 4월20일에는 서울의 국채보상연합회의 소장 이준의 공함을 받았다. 고령단연회에서는 임원의 임명과 동시에 각 면동에 금주단연취지서와 회칙을 보내어 의연금 모금을 독려하였다. 다산면 총무 이택로와 재무 서성순의 보고서에 의하면 흉년으로 의연금 모금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의연금납부명단을 살펴보면 이중엽 이봉조 이규신 김덕준 기장건 김희국 김성제 박장하 이영일 정재인 등과 여성으로는 박부인 두부인 이부인 김부인도 참여하였고 군민 다수가 동참하였다. 특히 읍헌동 정부인은 으가락지를 쾌척하였으며 개포동 학도와 동암동 나무꾼도 동참하였다. 일년간 활발히 전개된 국채보상운동은 일제의 방해로 의연금 처리가 원만하게 해결되지 못하자 1908년 1월 11일 고령 향약회의 박을원 김봉희 박경순 등이 중심이 되어 25개 면 대표 46명이 완의문을 작성하여 본군의 의연금을 향중에서 관리하기로 결의하였다. 1909년 8월 14일에는 사립 우신학교 교장 이봉조 등이 의무금을 학교의 운영자금으로 사용하고자 반환을 요청하였다. 이것으로 볼 때 국채보상운동의연금이 후진양성을 위한 교육에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고령군 국채보상운동은 2013년 홍와고택에서 발굴된 자료를 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