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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해녀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투쟁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고사만은 1927년 사회주의를 받아들이고 혁명적 농민조합 결성을 위해 활동했다. 1930년 그는 문도배(文道培)·신재홍(申才弘) 등과 ‘혁우동맹(革友同盟)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한 후 농민부·청년부·소년부·여성부를 편성하여 분야별로 계몽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사유재산제도와 일본제국주의를 부인하는 사회주의 선전에도 나섰다. ‘조선공산당 제주 야체이카’ 조직 등에 나선 고사만은 혁우동맹을 해소시키고 농민단체와 해녀조합 결성을 주도하였다. 이런 가운데 제주지역에서는 민족적 열기와 식민체제에 대한 반감이 고조되어 갔다. 1931년 1월 제주에서는 해녀들에 대한 불합리한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투쟁이 일어났다. 관제적인 해녀어업조합에 반대하고 있던 해녀들은 1천여 명의 시위대로 일경에 맞섰다. 이때 고사만은 해녀들의 항일운동 배후지도자로 지목되어 일경에 붙잡혀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재판이 지연되는 가운데 1년 10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