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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세빈 선생(1893~1938) 송덕비 동구 일산동 출신으로 3.1운동 이후 교육만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사랑방에 청소년을 모아놓고 가르쳐 오다가 학교를 세울 것을 결심하고 사재를 털어 이곳에 교육의 터를 마련하고 스스로 땅을 고르고 건물을 지어 문맹을 퇴치하고 항일 구국운동에 기여하겠다는 일념으로 청소년들의 정신개발과 문자보급 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보성학교를 설립하였다. 성세빈 선생은 1925년 10월 울산 청년동맹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사회단체 정우회 울산지회 간부 신간회 울산지회 서기와 서무간사 등으로 항일투쟁의 선두에서 농촌계몽과 항일정신의 고취에 앞장 선 지도자였으며 설립 후 약 9년간 8백여명의 졸업생을 내자 일제는 1929년 3월 보성학교를 강제 해산시켰으며, 1931년경 주민들의 여론에 따라 성세빈, 성세륭 형제는 보성학교를 재설립하여 1945년까지 울산지역 기둥 수백명을 배출한 훌륭한 공로자였다. 또한 두 형제분은 울산 신간회 소속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이 고장 사학의 유지와 후진의 교육에 혁혁한 공을 남겨 그의 희생과 봉사 정신을 잊지 못하는 못하는 지역민과 제자들이 성금을 모아 공적비를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