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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상주시 모동면 덕곡리 산153 로 예상되는 주위를 돌아봐도 찾을수가 없다.
다음에 다시 조사를 해봐야 할 것 같다.
노병대(1856~1913)는 한(韓) 말 속리산에서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가 잡혀 공주형무소에 갇혔으나,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일본인의 국경일이라 하여 풀려 났었다. 석방된 후 다시 활동하다가 잡혀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었고, 단식투쟁 중 옥사했다.
다음내용은 독립기념관 공훈록의 내용 일부분이다.
1908년 6월 15일(음력) 보은의 관주점(冠酒店)에서 일군에게 붙잡혔는데 그 당시의 문답은 다음과 같았다.
"너는 어째서 의병을 일으켰느냐?" => "너희는 우리 원수다. 너의 종족을 다 없애려 한 것이다."
"함께 일을 꾀한 사람이 몇 명인가?" => "내가 주모자이니, 다른 사람은 알 것 없다."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 => "거사할 때 죽을 사(死) 자를 이마 위에 붙여 놓았다. 속히 죽여라."
이처럼 그는 거사할때부터 죽음을 각오한 터이었다. 그 후 공주재판소로 송치되었다. 그가 끝내 굴하지 않자, 적은 그의 한 눈을 제거하였다. 단식하여 자진하고자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10년형을 선고받았다. 1910년 국권침탈조약 늑결시 특사로 풀렸으나 "너의 경사인데 왜 나를 석방하느냐"며 버티다가 강제로 출옥 당하였다.
다시 재거를 획책하다가 체포되어 대구재판소에서 1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단식 28일만에 피를 토하고 타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