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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경술국치 이후 국권회복을 도모하던 중 1913년에 채기중·유창순·유장렬·한훈·강순필·정진화 등과 함께 풍기에서 풍기광복단을 결성하였다. 대부분 의병적 성향의 인사가 참여한 풍기광복단은 독립군 양성을 위한 무기구입과 군자금 모집에 실천방략을 두고 독립운동을 폈다. 그리하여 그는 1914년에 보은면장 박창빈으로부터 권총 10정을 제공받아 박영효 등을 암살하려던 김재성에게 교부했었는데, 사전 발각됨으로써 일경에 피체되어 징역 5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후 동단이 1915년에 조선국권회복단의 박상진 등과 통합하여 대한광복회를 결성하게 되자, 이에 참여·활동했다. 국내민족운동이 전반적으로 봉쇄되던 무렵인 1910년대 국내의 독립군 단체로 결성된 대한광복회는 군자금을 조달하여 만주의 독립군 기지에서 혁명군을 양성하는 한편 국내에 확보한 혁명기지를 거점으로 적시에 봉기함으로써 독립을 쟁취한다는 구도를 갖고 있었다. 그리하여 우선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해 갔는데, 이때 정운기는 각도의 자산가 명단을 작성하는 외에 군자금 모집에 필요한 〈경고문〉을 발송하면서 군자금 수합에 힘을 쏟았다. 또 1917년 12월 동단에서 칠곡의 부호 장승원을 처단한 후 채기중·강순필 등의 피신을 도왔다. 그러던 중 1918년초 대한광복회의 조직이 발각됨으로써 이에 연루되어 피체되었으나 1919년 9월 경성복심법원에서 면소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