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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윤칠월이었다. 함양군 수동면 도북마을 역시 밤에는 군경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오지였다. 이에 따라 밤이면 빨치산으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 주민들이 목책을 세우고 죽창을 든 채 자체적으로 마을 경비를 섰다. 어느날 밤 경비를 서고 있던 주민들은 이 마을의 이발사 정주상 씨가 짐을 챙겨 도주하는 것을 발견, 그를 붙잡아 수동지서에 넘겼다. 경찰은 정주상 씨에 대한 조사를 벌이며 그의 이발관을 수색하던 중 마을주민 40여 명의 이름이 적힌 장부를 발견했다. "그건 외상으로 이발을 하고 가을걷이를 마치면 곡식으로 이발료를 갚기로 한 외상장부였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정주상의 허위자백을 근거로 그 명단에 적힌 사람들을 빨치산 협력자로 몰았어요." 당시 35세였던 아버지를 잃은 차용현씨의 증언이다. 경찰은 출타 중이거나 자리를 피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35명을 함양경찰서로 끌고 갔고, 혹독한 고문 끝에 32명을 함양읍에 주둔하고 있던 군부대에 넘겼다. 결국 이들 32명은 군부대에 의해 함양읍 이은리 당그래산 골짜기에서 무참히 학살됐다. 그 날이 1949년 9월 20일이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경찰과 우익단체 회원들은 학살 후 마을 주민들의 집단반발을 우려해 마을 전체를 불태워버리고 강제로 이주토록 했다. - 출처 : 말뚝이의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