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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2024년 3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3월의 독립운동가 멘지스는 버려진 아이들과 고아들을 모아 1893년 이 지역 최초의 고아원인 미오라고아원을 설립 운영 하기도 했으며, 1895년에 고아들을 모아 설립한 여 학교는 후일 이 지역 여성교육의 명문인 일신여학교 로 발전하였다. 그녀는 건강과 가정 사정으로 1908 년 선교사직을 사임하고 귀국했다. 하지만 1912년 다시 내한하여 1924년 은퇴하기까지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부산 지역의 복음 전도와 교육사업, 자선사 업에 헌신했다. 1919년 3월 3 · 1운동이 일어나던 무렵 멘지스는 일신여학교 기숙사 사감을 맡고 있었다. 그녀는 기숙 사 학생들이 부산지역 3 · 1운동을 일으키려 하는 것 을 눈치채고 있었으나, 이를 막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3월 10일 밤 태극기를 만들 때 깃대를 제공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만든 태극기와 제작 도 구를 보관해 주었다. 3월 11일 저녁 일신여학교 교사 와 학생들이 만세시위를 일으키자 이들을 보호했다. 교장 데이비스와 교사 호킹이 학생들을 찾아 나서면 서 멘지스는 기숙사를 지키며 학생들을 보호했다. 주동 학생들이 체포된 후 그들의 증언에 따라 멘 지스도 경찰서에 끌려가 취조를 받았다. 기숙사는 수색을 당하여 태극기와 태극기 제작 도구들이 모 두 압수되었다. 3월 14일에는 부산지방법원에 불려 가 데이비스, 호킹과 함께 대조 심문을 받았다. 그 러나 영국 영사관의 개입으로 경고를 받고 풀려났 다. 1924년 은퇴 후 고향에 돌아가 여생을 보내다가 1935년 9월 10일 별세하였다. 데이지 호킹과 3 · 1운동 데이지 호킹(Daisy Hocking, 許大是)은 1888년 11월 26일 오스트레일리아 벨라린(Bellarine)에서 태어났다. 26세 때인 1914년 9월 한국선교사로 승 인된 후, 디커니스 훈련소에 들어가 18개월 동안 훈 련을 받고, 1916년 3월 내한하였다. 부산선교부에 배치되어 어학공부를 하면서 선교훈련을 받았다. 1917년 초 스키너와 함께 마산선교부로 이전해 한 호주 교사 · 선교사 데이지 호킹 동래여고 내 ‘부산일신여학교만세운동기념비’(독립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