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page
66page
안면도 반핵 주민운동의 의의. 박재묵(충남대, 사회학교수)
1990년 11월 초순부터 약 2년 5개월 동안 안면도 주민은 정부의 핵폐기물처분장 건설 추진에 맞서 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안면도항쟁은 운동 초기인 1990년 11월 8일에 절정에 이르렀으나, 그 후 정부가 일단 취소한 핵폐기물처분장 건설을 다시 추진함에 따라 이를 저지하기 위한 주민들의 투쟁이 재개되어 운동은 장기화되었다. 따라서 안면도항쟁은 '안면도 핵폐기장 설치반대투쟁위원회'가 조직된 1990년 11월 5일에 시작되어 '안면도핵폐기장 백지화 승리기념 주민화합 큰 잔치'가 열린 1993년 3월 25일까지 지속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약 2년 5개월에 이르는 운동 기간에 많은 집회와 시위가 이루어졌지만, 1990년 11월 8일의 시위는 우리나라 지역운동사에 새로운 발자취를 남겼다. 이날 시위에는 당시 안면도 전체 주민 1만7천2백여명의 60%가 넘는 1만명 이상의 주민이 참여하여 주민 참여의 측면에서 새로운 장을 열었다. 당시 다수의 언론은 시위 참여자가 1만명 수준이었다고 보도하였으나, 일부 언론은 시위 참여자 규모를 1만2천명(한겨레신문) 또는 1만5 천명(대전일보)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또한 시위는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치열한 양상을 보여주었다. 시위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경까지 하루 종일 지속되었고, 시위대가 공권력을 마비시키는 수준으로 지역을 장악했다. 격렬한 시위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폭력이 수반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이날 시위를 통해 안면도 도민들은 핵폐기물처분장 건설을 반대하는 결연한 의지와 단결된 힘을 과시함으로써 당일로 정부로부터 건설계획 취소 결정을 이끌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