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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사학과 출신인 김병서 출향인에 따르면 윤사혁(尹師赫, 일본식 이름: 平川博敏, 1887년 ~ ?)은 일제강점기 때인 1936년 11월부터 1940년 9월까지 보은군수를 지낸 사람으로 민족문제 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 사전에 수록된 반민족행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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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사전 수록 내용 윤사혁 尹師赫 平川博敏, 1887년 ~ ?
1887년 6월 18일 태어났다. 충청북도 출신이다. 경성 관립 공업전습소를 졸업했다. 1913년 11월 충청북도 고원(雇員)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1917년 판임관견습시험에 합격했으며, 1918년 충청북도 보은군 서기에 임명되었다. 1921년부터 지방관제 개정에 따라 보은군 속으로 바뀌었다. 이어 1926년 10월부터 충청북도 진천군 속, 1929년 7월 음성군 속, 1932년 5월 청주군 속을 차례로 지냈다. 1932년 11월 음성군 속으로 다시 옮겨 서무주임을 맡았고, 1934년 5월부터 내무계 주임을, 1936년에는 경성전매지국 충주출장소 속을 겸했다. 1932년 10월 조선쇼와(昭和)5년국세조사기념장을, 1935년 10월 시정25주년기념표창을 받았다.
1936년 11월 군수로 승진해 보은군수로 재직하다가 1940년 9월 퇴직했다. 보은군수로 재직하는 동안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군용물자 조달, 군수품 공출, 여론 환기와 국방사상 보급, 생산확충 자원 개발, 전사상자(戰死傷者) 위문과 유가족 후원, 국방헌금가 애국기 헌납자금 모금 등 전시(戰時)업무를 적극 수행하여 “지나사변공적조서”에 이름이 올랐다. 퇴직 후 충청북도 청주군 사주면장을 맡았고, 1941년 12월부터 1943년까지 면장으로서 주임관 대우를 받았다. 면장으로 재직 중이던 1941년 만주국으로 이민을 알선, 지도한다는 명목으로 조직된 충북이민협회의 이사로 활동했으며 1943년 4월 청주군의 상당(上黨)금융조합 감사를 지냈다. 출처 : 보은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