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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 전투 3 영광스런 글로스터대내 나그네여, 가서 스파르트인들에게 전하라, 우리는 그들의 명령에 따랐고, 여기 죽었노라. 시모니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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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부의 시골청년들 서부 잉글랜드의 교외 지역 중 하나인 글로스터에서 동원된 글로스터군은 사실 정예군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곳 설마리에서 C중대, 제170독립 박격포중대, 야전왕립포병연대와 함께 영국의 역사상 가장 치열한 방어전있던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 1897년의 이산들와나 전투, 및 1944년의 이른헴 전투에 버금가는 방어전을 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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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투개시 4월 22일 해질녘, 16명의 글로스터대대 순찰대는 하굿둑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저녁 10시 30분경, 그들은 사람들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조명탄 아래, 그들은 강을 건너는 적들을 보았습니다. 사격의 시작과 함께 대포들이 발사되었습니다. 대학살이 시작됐으며 8000명으로 구성된 중공군 제187사단의 선봉대는 총구가 마르기도 전에 전멸했습니다. 순찰대는 중공군의 연락책을 차단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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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칠중성 강 건너 종공군은 9대1로 우세하게 배치되었습니다. 그들의 첫번째 목표는 A중대가 방어하고 있던 고지의 꼭대기, 신라시대 요새를 둘러싸여있는 칠중성을 빼앗는 것이었습니다. A중대이 방어는 무너졌으며 중대장은 무전으로 철수 하기를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몇분후, 그는 전사했습니다. 중공군이 고지 정상을 장악했지만 필 커티스 중령의 희생으로 고지를 탈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새벽에 생존자들은 235고지로 철수했습니다(기념공원 뒤쪽 지역). 또한 공격으로 인해 왼쪽 측면이 격파된 상태의 D중대와 합류하였습니다. 지금 서 계신 위치의 쥐쪽 도로 위 구급처로 이동하던 부상자들을 향해 기관총이 난사되었습니다. 글로스터대대는 포위당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