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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의 삶과 죽음 삼환택시는 연장수당 한푼없이 매일 10~12시간 일을 시키고, 몸이 아파 미리 통보를 하고 결근을 하는 경우에도 무단결근으로 처리하여 월급에서 일당을 제 하였다. 또한 기사들에게 반말과 욕설을 다반사로 퍼붓는 등 억압적 노무관리를 하며 노조 조합장을 강제로 사직시키고 열성적인 조합원들에게 헌차를 배정하거 나 스페어로 끌어내리는 등의 노조탄압을 가해왔다. 평소 입바른 소리를 잘하고 부당한 처우에 대해 거세게 항의해오던 동지는 회 사에서 기사들에게 세차비를 부담시키자 이를 거부하였다. 그러자 회사 측은 배 차정지를 시켜 3일간 일을 못하게 하고 월급에서 임금을 공제시켰다. 동지는 이 에 반발하여 회사 앞에서 알몸시위를 하였다. 4월 21일에는 배차를 받아 회사에 서 나오다가 좁은 골목에서 사장 차와 마주치게 되었으나 뒤로 비키지 않고 그대 로 몰고 나왔다. 이를 빌미로 사장은 동지를 해고시켰고, 이에 반발하여 출근투 쟁을 벌였다. 당시 해고는 운수노동자들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취업카드 라는 제도 때문에 다시는 핸들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동지는 해고된 날부터 매일 제시간에 회사로 나와 복직을 주장하며 출근투쟁 을 벌였다. 하지만 회사 측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파출소에 신고하여 동지를 끌고 가게 하였다. 파출소에서 나온 동지는 이에 굴하지 않고 복직투쟁을 계속하였다. 그리고 30일, 동지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 출근하여, “만약 복직을 안 시키면 분 신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사장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았으며 결국 동지는 마 지막 선택으로 분신을 감행하였다. 회사 측은 아무도 모르게 동지를 한강 성심병원으로 옮기고 소식을 듣고 달려 온 가족과 동지들에게 동지가 이미 죽었다며 면회조차 거부하며 합의할 것을 협 박하였다. 그러나 동지는 5월 1일 가족들에게“미안하다. 하지만 이 길밖에 없다. 노동자 들이 떳떳하게 잘 사는 세상이 와야 할텐데…”라는 말을 남기고 운명하였다. 변형진 (당시38세) 화 장 1948년 3월 16일 강화도 삼산군 출생 1961년 강화도 삼산국민학교 졸업 1976년 대성연탄 취직 1981년 택시기사로 취직 1985년 삼환택시 입사 1986년 4월 22일 부당해고 통고, 4월 30일까지 출근투쟁 1986년 4월30일 오후 2시 30분경 회사 앞에서 분신, 한강성심병원으로 이송 1986일 5월 1일 운명 끝내살리라 |129| |128|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전두환정권 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