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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욕무상이 아니라, 실로 민족사의 방향을 좌우했던 것이다. 간신 배들의 승리는 공을 중심으로 한 당시 화랑계통의 민족노선을 짓밟은 것이니 공의 뜻이 꺾임은 그대로 치솟아 올라가던 민족이상의 탑이 밤새 무너진 것이라, 생각할수록 통분하기 짝이 없거니와, 어찌 천추의 한이란 말로만 그치고 말 것이랴. 9성을 철수한 지 겨우 6년에 완안부 추장 아골타가 일어나 금나라를 세웠거니와, 우리가 그 땅을 지켰던들 거란을 엎지를 자가 저들이 아니요 우리가 아니었겠느냐, 뒷날 세종때 김종서장군이 경성(鏡城) 서쪽에 있는 승암산(僧岩山) 위에 공을 모시는 사당을 짓고 제사했으며, 그 뒤로는 사당 이름을 호당(芦堂)이라 부르며 향불이 끊어지지 아니하였고 선조 때에는 시중묘(侍中廟)라 사액까지 했으며, 영조께서 분묘에 치제하셨고, 순종께서는 특히 지방관 홍우관을 보내어 공의 무덤에 제사하는 등 역사를 통해 공을 추모하기를 말지 않았음을 보거니와 다시 한번 생각건대 옛날 김장군의 육진 개척도 공의 9성을 다 못 찾은 것임을 보면 9성은 과연 역사적인 장거요, 또 고구려 옛땅을 되찾을 수 있는 발판이기도 했건만, 슬프다! 꿈은 사라지고 오늘은 그나마 길도 끊어져 소식조차 알 길 없음을 어찌하랴. 이제 나는 옛 터를 찾아와 공의 무덤과 오랜 영정 앞에 머리를 숙여 분향하고, 풍우 속에 흘러간 9백년 세월을 더듬어 공을 그리며, 삼가 노래를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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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뢰전(曷賴甸) 눈얼음 박차고 삼군병마를 몰아치던 날 고각(鼓角) 소리 구름을 찢고 오색 깃발 바람에 얼어도 영웅의 불타는 정열에 강산은 되려 훈훈했으리. 두만강 건너 7백리를 달려 선춘령 아래 큰비를 세워, 여기까지가 고려 땅이라 굵은 글자로 새기시고서, 팔 들고 외치시던 님! 그 모습 지금 한번 보고 싶구려, 동북 몇 고을 귀해서리까 대륙 되찾을 발판이었소. 땅 조각 잃은게 분함 아니라, 역사 죽은 게 통분해서요. 세월은 구백 년이나 흘러도 님의 정한은 달랠 길 없소. 이 무덤에 몸을 끼쳐도 혼이사 구성에 가 계시오리, 오늘은 붓을 쥐고 님의 묘비에 글을 쓰오나, 뒷날엔 막대를 던져 북녘 구름을 헤치오리다. 전주후인 이은상(李殷相)글, 20대손 석오(錫五)글씨 1966년 10월 29대손 경수(敬秀)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