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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독립운동 • 3·1운동 63 독립운동은 충북, 경기, 강원, 황해, 평북 지역에서도 전개됐다. 충남에서는 연기, 공주, 청양, 예산, 아산, 홍성, 서산 등 12개군, 64개면, 216개 마을에서 338 회의 횃불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됐다. 특히 4월 4일 예산군 9개면 18개소, 홍성군 4개면 24개소, 당진군 면천 8개 마을과 순성 10개 마을 등 3개군 15개면 60개소 산 위에서 횃불이 올려지고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어린 아이들도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했다. 3월 10 일 함남 신흥의 동고천에서는 학생과 주민들이 어린 아이(小兒)와 함께 헌병분견소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4월 10일 함북 종성의 용계 종산동 헌병주 재소 뒤편에서 10~13세 서당 학생 5명이 독립만세 를 외쳤다. 남편에 이어 부인도 독립만세를 외쳤다. 경북 영 덕에서는 3월 18일 영덕 읍내에서 김태을, 3월 19일 지품 원전동 시장에서 주명우가 독립만세를 외쳐 영 덕경찰서에 구금되자, 부인인 윤악이와 신분금 은 3 월 24일 함께 시장에 나아갔다. 윤악이가 ‘자신들은 여자이지만 한국의 독립을 희망하여 한국만세를 부 른다’고 연설을 하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고령(高齡)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독립만세를 권유 한 활동이 이어지기도 했다. 4월 1일 강원 횡성 읍내 에서 수비대의 무력 진압으로 5명이 순국하고 8명 이 부상당했다. 이에 천선재는 78세의 노구를 이끌 고 인접 면인 영월군 수주면, 양변면에서 4월 8·9·10 일 3일 동안 독립만세 권유 활동을 전개했다가 징역 1년의 옥살이라는 고초를 겪었다. 잊혀지지 않는 상흔들, 독립운동의 밀알이 되어 대한민국을 탄생시키다 일제는 경찰과 헌병뿐만 아니라 조선 주둔 병력, 증파 병력, 철도엄호대 병력과 소방조원까지 출동시 켰고 재향군인회원 및 일본인 민간인까지 동원시켜 ‘충남최초 3·1운동발생 기념’ 동상 (충남 예산군 예산읍)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달홀공원에 세워진 고성3·1독립만세운동기념비(아시아뉴스 통신 제공). 고성에서 영동(강원도 동해안) 지역 최초로 3·1운동이 전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