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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일 (당시25세)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1960년 전남 화순 출생 광주 양동국민학교 졸업 1984년 2월 ‘사우디’에 미장공으로 취업 1985년 2월 귀국하여 건설 사업장을 전전하며 어렵게 생활 1985년 8월 15일 오후 1시 전남 도청앞 금남으로 1가에서‘8.15를 맞이하는 뜨거움의 무등산이여!’ 라는 전단을 뿌리면서 군부독재정권에 항거하여 분신 |124| 민족민주열사∙희생자자료집증보판 전두환정권 노동 동지의 삶과 죽음 ’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당시 시민군으로 참였다가 총상을 입기도 하였던 동 지는 그 후 건축노동자로 일해 오면서5.18의 의미를 되새기며 이 나라의 민주화 를 위해 자기의 할 일을 모색하며 열심히 살아왔다. 광복 40주년을 맞이했던 ’85년 8월 15일 오후 1시, 광주민중항쟁의 역사적 장 소인 전남 도청 앞에서 동지가 온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성냥을 그어 불을 붙인 다음 불길에 휩싸인 채 동구청까지 돌진하였다. 동지는 돌진하면서‘8.15를 맞이 하는 뜨거운 무등산이여!’라는 유인물과 부모님과 형에게 보내는 유서를 뿌리면 서“광주시민이여! 침묵에서 깨어나라!!”, “학원안정법 반대투쟁에 결사적으로 나서자”“민주주의 만세, 민족통일 만세”“뭉칩시다”등의 구호를 외쳤다. 그리고 일주일만인 22일 새벽, 임종을 지켜보는 아버지에게“절대 비굴해 지 지 말라. 저 사람들(경찰)과 타협해서는 안된다”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산화하 였다. 병원에서 입원해 있던 7일간, 동지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조금도 초조한 기색이 없었으며 오히려 국민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의연한 모습으로 주위 사람 들을 숙연하게 했다. 경찰과 의사들은 동지가 낮에 운명할 경우 시신을 탈취하기 힘들 것을 예측하 여 강제로 산소호흡을 시키다가 새벽에 아직도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동지의 산 소호흡기를 제거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동지가 운명하자 아버지를 화순 군 도안면 백지리 야산으로 강제동행시켜 가족장으로 동지를 매장시켜 버리는 폭거를 자행하였다. ‘아버님, 어머님께서는알고 계실 겁니다. 현재 처해 있는 우리들의 무서운 현실 말입니다. 아버님. 누군가누군가가, 우리모두가일어서지않으면안됩니다. 빈부의격차를떠나산다는 의미의지혜가이처럼허무하게느껴지는현실에발등에떨어진불부터끄고봐야한다는여 러사람들의생각에폭탄을터뜨리기위해선성냥이필요합니다.’ - 유서중에서- 끝내살리라 |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