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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선열을 추모하는 글 우리 제주도민은 역사적 환경의 전통성과 지리적 환경의 특수성을 말미암아 불의를 용납할 수 없는 정의감과 부당한 억압에 대한 저항의식이 남달리 강하였다. 일찌기 16세기에 임진왜란을 일으켜 우리 민족에게 지울 수 없는 아픔을 주었던 일본은 근세 말기에 이르러 다시 호시탐탐 한반도를 노려보기 시작하다가, 1876년에는 이른바 병자수호조규를 강제로 체결함을 시작으로 1904년에는 한일의정서와 한일협약이 연이어 이루어지더니, 1905년에는 을사조약이 체결되었던 것이다. 다음 1907년에는 다시 한일신협약이 체결되더니, 1910년 드디어 한일합방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 조국은 완전히 일본에게 빼앗기고 말았던 것이다. 이와 같은 역사의 격동기에 있어서 우리 제주도민은 1883년, 일본어민에 의한 어업권의 침탈을 강경하게 항의하는 등 점차 반일의 자세를 가다듬더니, 한일합방을 바로 앞둔 1909년에는 일부 제주 유림들을 중심으로 왜적토벌을 결의하고 제주의병을 일으켰던 것이나, 모처럼의 창의도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18년의 법정사 항쟁을 전후하여서는 제주도의 모든 종교계가 교파를 초춸하여 항일 투쟁에 나섰던 것이며, 그 이듬해인 1919년에는 제주도 항일운동의 분수령을 이루었던 이른바 조천만세운동을 시발로, 전도적인 항일운동이 거세게 전개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1930년을 전후하였던 제주해녀의 일제에 대한 항쟁의 경우는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그만큼 강렬한 항일투쟁을 전개할 수 있었다는데서 더욱 주목할만 하거니와, 이 밖에도 1930년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제주농민조합 항일사건, 서귀리의 독서회사건, 조천리 출신들이 중심이 된 신좌소비조합운동사건, 제주농업학교에 있어서의 일본인 교사 배척사건, 부당졸업사정 항의사건, 독서회운동 사건 등 사회 지도자충, 노동자 농민층, 학생층들이 총망라된 대대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