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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에 우리 괴산군이 낳은 장하신 애국의사 한분이 누어 계시다. 그 분이 바로 우리 주권을 일제가 강탈하자 감연히 얼어서 독립을 위하여 생명을 내걸고 무수한 투쟁을 하시다가 서거하신 정운기선생이시다. 선생은 영일 정송강의 12대손이자 명원공의 차남으로 1877년 9월 27일 성면에서 출생하사 자 유시로 남다른 재질과 인품을 가지고 계시더니 경술(1910) 국치를 당하자 분연히 국권회복에 뜻을 두시고 1913년에 경북 풍기에서 독립투사 채기중 염창순 유장열 안병수 정진화등과 더부러 대한광복단을 조직하시어 군자금 모금과 의병모집운동을 감행하신것을 위시하여 1914년 5월에는 동지 김재상투사와 함께 매국도당 살해를 위한 총기구입자금조달에 앞장서서 동학란때 사용했던 총 10정을 은익자 박창빈면장으로 부터 얻어내는 한편 박동식 송재각씨로부터 거액의 군자금을 얻어서 광복단자금으로 제공하는데 성공하셨고 면리가 불법징수한 민세를 강탈하여다 일경에 발각 피체되어 못이 박힌 송판위를 걷는 모진 고문으로 8개월의 옥고를 치르시고도 양쪽발가락을 절단당하여 불구가되시기도 했다. 1915년 7월 15일에는 대구에서 활약하던 박상진 우재룡 김한종등과 합세하여 광복회라 개칭하였고 익년에는 노백린 김좌진 신현대등과 함께 광복단으로 환원하여 단세를 수백명으로 확장하는 동시에 "오등은 대한독립의 국권을 광복하기위하여 죽음으로써 결의하고 구적 일본을 완전 구축하기로 천지신명께 선함"이란 선언을 하며 혈맹하고 국내이로 분파하여 활동하기로 약정하고 노백린은 동지 10여명과 상해등지로 떠나고 김좌진은 박성태등 동지와 만주로 출발하고 선생은 국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