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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2025년 10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10월의 독립운동 를 금지하였다. 이에 따 라 1937년부터 한글날 기념식은 열리지 못했 다. 중일전쟁과 함께 시 작된 전시체제기에 일 본은 식민지 내에서 어 떠한 민족주의 운동도 허용하지 않았고, 조선 어학회의 이윤재, 최현 배 등이 민족운동을 이 유로 옥고를 치렀다. 그 러한 상황에서도, 1942 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와해되기 전까지, 조선어학회는 조선어사전편찬사 업을 지속했다. 일본의 국어상용화정책으로 우리 말 과 글의 존립을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사전 편찬을 지속했던 힘의 원천은 우리 말과 글을 지켜 민족을 지켜야 한다는 소명의식이었다. 1937년부터 한글날 기념식은 금지되었지만, 해마다 한글날이 오면 그들 은 한글을 통해 맛보았던 “신생명의 역동”을 떠올리 며 소명의식을 새롭게 다지지 않았을까? 1945년, 문화적 해방의 날로 한글날을 기념하다 해방 후 한글날은 10월 9일로 바뀐다. 1926년부 터 11월 4일을 한글 반포 기념일로 지정한 후, 한글 날은 음력과 양력의 환산법을 바꾸면서 10월 29일 과 28일로 날짜를 조정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해방 후 한글날이 바뀐 것은 몰랐던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1940년에 한글의 제자 원리와 창제 동기 등을 정리한 『훈민정음』이 발견되었다. 이 책자의 말 미에 적힌 저술 완결 시점은 1446년 9월 상한인 데, 이를 통해 한글 반포일의 근거가 된 『세종실록』 (1446.9.29.)의 기록, 즉 “이 달에 훈민정음이 완성 되었다”가 『훈민정음』의 완성을 뜻하는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9월 29일이 아닌 9월 상한을 기준으로 한글 반포일을 정해야 했고, 1945년에 해 방이 되면서 한글날을 10월 9일로 확정하였다. 해방 후 맞는 한글날은 해방의 기쁨을 나누고 해 방 이후 국어 재건의 과제를 공유하고 점검하는 날 이 되었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사전 원고가 일본 경찰에 압수되는 바람에 마무리하지 못했던 우리말 사전의 출간, 학교 교육을 위한 한글 교과서 출간, 한글 보급을 위한 강습회 실시 등의 당면 과제를 한 글날을 계기로 점검하고 구체화한 것이다. 한글날을 기념하며 한글의 과학성과 우수성을 확인하는 시간 은 곧 우수한 우리 민족이 국가 재건의 과제를 차질 조선어학회의 우리말 사전 편찬과 한글운동 등 을 소재로 2019년 1월 개봉한 영화 ‘말모이’(영 화사 제공)   「한글 마춤법 통일안」(조선어학회, 1933,  국립한글박물관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