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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2025년 9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9월의 독립운동 임시정부는 같은 해 9월 15일 「한국광복군 선언문」 을 발표하여 광복군 창설을 내외에 공포하였다. 광 복군 창설을 선언한 임시정부는 9월 17일 충칭의 가 릉빈관(嘉陵賓館)에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식 을 개최하였다. 이 자리에서 한국광복군이 정신적으 로 대한제국의 국군을, 인적 맥락으로는 독립군을 계승하였음을 내외에 천명하였다. 조직 및 편제 창설 후 한국광복군은 총 사령부 외에 3개 지대(支隊) 로 이루어졌다. 초기에는 충 분한 병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총사령부를 먼저 설 립하고, 이후 단위부대를 편 성해가는 하향식 편제방식 을 취하였다. 이러한 지대 편성의 방침에 따라 시안의 광복군 총사령부는 제1·제 2·제3지대의 3개 지대를 편 성하였다. 총사령부의 기본 목표는 3개 사단을 편성하 는 것이었고, 총사령부와 군 사특파단 인원들로 3개 지 대를 편성하였다. 그러나 1941년 1월 한국청년전지 공작대가 한국광복군에 편 입하여 제5지대가 됨으로써 모두 4개 지대를 갖추게 되 었다. 이로써 초기 광복군은 총사령부와 그 단위부대로 4개 지대의 편제를 갖추 어 활동을 시작하였다. 한국광복군의 편제는 1942년에 전면적으로 개편 되었다. 임시정부가 중국군사위원회의 통제와 간섭 을 일부 받게 된 것도 영향을 주었다. 시안에 나가 있던 총사령부는 충칭으로 복귀하고 그 기구는 축 소·단순화되었다. 게다가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 입되면서 기존 각 지대의 통합 또는 재편성이 불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조직 조 례(1940.10.9) 한국광복군 기관지 『광복』(이상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린촨에 있었던 한국광복군 간부 훈련소 한광반 제 1기 사진(1944년 9월). 장준하, 김준엽 등이  속해있었다(나무위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