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page

62 2025년 3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3월의 독립운동 지방에서 고종(광무황제)의 국장을 참례하기 위해 상경했던 인사들이 경성(京城)의 독립선언과 독립만 세에 직접 참여했거나 견문하고 귀향하여 3·1독립운 동을 지방에 전했다. 일본 유학생들이 귀국하여 경 성이나 고향에서 머물며 2·8독립선언을 전달하기도 했다. 3월 10일 경성의 휴교령으로 지방 출신 학생 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서울의 독립운동이 전국 각지에 알려졌다. 또한 3월 6일 보도 금지의 해제로 3월 7일자부터 언론보도가 이루어져 신문 판매 지역 과 구독자들에게 3·1독립운동을 알렸다. 그리고 한 지역의 독립만세운동이 이웃 지역으로 전파되고 지 역 간 이동 인사나 시장 장꾼들에 의해 만세 소식이 급속히 전파됐다. 3월 10일 전후에는 평남과 평북을 중심으로 황해 와 함남 및 경기 지방에서 독립만세운동이 활발히 전개됐다. 20일 전후는 충남과 경북 및 경남 지방으 로 만세운동의 중심이 이동했다. 하순에는 독립운동 이 일반화, 대중화되고 3월 26일 이후부터는 전국 13도 가운데 10~11개 도에서 매일 같이 대한독립만 세의 함성이 메아리쳤다. 이 시기 경기도에서는 1일 에 적게는 22회, 많게는 33회까지 독립만세를 연호 했다. 3월 31일 이후 4월 4일까지의 5일간은 각 도에서 전개한 독립만세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였다. 4월 12일 11회와 4월 15일 14회를 제외하고 4월 13일부터는 추세가 급속히 약화되어 전국에서 10회 이하의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4월 19일, 22 일, 25일, 30일의 4일에는 전혀 독립만세를 부르지 않았다. 5월에 이르러서는 몇 일만에 1~2회의 만세 를 불렀다. 5월 말일까지 경성과 경기 423회, 충북 87회, 충 남 193회, 전북 43회, 전남 45회, 경북 122회, 경남 153회, 황해 180회, 평남 118회, 평북 150회, 강원 88회, 함남 85회, 함북 55회로 전국에서 1,744회에 걸쳐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또한 사전에 제지되어 독립만세를 외치지 못한 사례가 310회나 됐다. 독 립만세를 외친 경우를 제외한 선언서가 배부된 곳은 66곳이고 유인물(격문, 경고문 등)을 제작, 배포 및 게시한 사례가 93곳에 이르렀다. 맨손으로 독립만세를 외치는 것이 일반적 형태였 지만 선언서, 격문 등 각종 유인물, 구한국기(태극기) 나 독립 깃발을 제작해 독립만세 현장에서 배포하거 나 독립 연설을 통해 독립만세 분위기를 고조시켰 다. 독립만세운동의 전개 과정에서 시장이나 마을을 활보하고 인접 마을이나 타 지역으로 행진을 하는 원정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 례로 3월 15일부터 19일까지 5일 동안 경북 의성의 안평, 4월 2일부터 6일까지 5일 동안 충북 영동의 황 간, 4월 4일부터 4월 7일까지 4일 동안 강원 양양에 서 만세운동 참여자들은 면내 각 마을이나 인접 면, 군(郡) 읍내로 만세 행진을 전개했다. 또한 독립만세운동의 발전적 형태인 횃불독립만 세운동이 전개됐다. 3월 23일 충북 청주의 강내 대 성리에서 조동식이 봉화고변지례(烽火告變之例) 2) 에 따라 주민들과 마을 산 위에 올라 불을 피우고 독립 만세를 고창하여 사방에 독립만세운동을 알렸다. 이 2) 변고(變故)가 있을 경우 봉화를 올려 변고를 알리고자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