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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2024년 4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일찍 영어 공부한 개화파 청년 양기탁(梁起鐸)은 1871년 평안남도 강서 군 소천(小川)에서 부친 시영(時英)과 모친 인 동장씨(仁同張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명 은 의종(宜鐘), 자(字)는 자명(子明), 아호는 우 강(雩岡), 본명은 기탁(起鐸)이다. 15세 때에 문장이 뛰어나 큰 포부를 품고 아버지를 따 라 상경하여 평북 위원(渭原)에 사는 유림 명 망가이며 우국지사인 나현태(羅鉉泰)를 만나 그의 심오한 학문과 높은 인격에 감명을 받 았다. 또한 외국어학원에서 영어를 공부하여 일찍이 서양문물에 접함으로써 개화파 청년 이 되었다. 핵심공적 1905년 영국인 베델과 함 께 『대한매일신보』를 발행 하고, 1907년 안창호 등과  신민회를 조직했다. 1911 년 ‘105인사건’으로 옥고 를 치르고 남만주로 망명했 다. 1934~3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을 맡았다. ■ 건국훈장 대통령장 양기탁(梁起鐸) 선생 대한매일신보 발행과 신민회 주역 만주에서 고려혁명당 창당 임시정부 국무령 활약 구국계몽운동에서 무장투쟁, 임시정부 참여 선각자 1904년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했다. 1907년 안창 호 등과 조국 광복을 도모하기 위한 비밀결사인 신 민회를 조직했다. 1920년 『동아일보』 창간 때 편집 고문에 취임했으며, 고려혁명당을 세워 무장투쟁을  지원했다. 투옥과 탈출, 항일투쟁을 끈질기게 지속 하였으며 1934년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령을 맡아  피난시기 임시정부를 이끌었다. 글 편집부 주요약력 ● 1871년 4월 2일 평안남도 강서군 출생 ● 1904년 7월 『대한매일신보』 창간, 구국계몽운동 ● 1911년 소위 ‘105인사건’으로 징역 6년형 선고 ● 1917년 12월 만주에서 동성한족청년회(東省韓族 靑年會) 조직 ● 1924년 11월 남만주 독립운동 조직 정의부 고문 ● 1926년 4월 만주에서 고려혁명당 창당 ● 1934년 1월 임시정부 국무령 선임 ● 1935년 5월 한국독립당 이사장 ● 1937년 4월 조선혁명당 중앙위원 ● 1938년 4월 19일 중국 강소성(江蘇省) 율양(栗陽) 에서 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