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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을 남달리 느끼면서 강직한 항일운동을 전개하며 가혹한 일제의 강압속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막대한 사재를 내여 배일사상을 고취하기 위하여 현 회천서교인 양정원을 설립하고 문물에 어두운 민중의 눈을 뜨게 하는 한편 창씨까지도 거부하였으니 장하여라. 만에 한 사람이라도 본받지 못할 일이로다. 뿐만 아니라 1941년 조국광복 전에는 가난에 시달리는 농민들에게 가대와 전답까지 무상으로 양여하였으니 감히 석숭의 재력으로도 이를 뒤따르지 못할 것이며 또한 분단된 국운이 서러워 하루의 영일도 없었고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려고 수많은 세월을 고노하시다 가시었으니 어찌 위나라의 충신 사어의 애국심에 뒤떨어지랴 밤은 고요하여 늘어진 잎사귀에 하늘바람 내리고 달은 밝아 뿜은 향기 시냇물에 서리었으니 선생이 피운 애국의 꽃은 기리 시들지 않으리라. 1971년 신해 11월 4일 선생의 2주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