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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을 순회하고 함경도에 이르러 북만주로 건너가려고 하였다. 1937년에 중일전쟁이 일어나서 선생은 부득이 일경의 눈을 피해 국내를 돌며 지하운동을 벌이던 중에 광복을 맞이하였다. 1945년 광복한 뒤에 건국사업에 매진하여 초대읍의원으로 선출되어 지역사회개발에 이바지하였다. 1960년 경자 4월 23일에 세상을 떠나니 향년 61세였다. 대전 현충원의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국가에서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3년에 대통령 표창을 1980년에 건국포장을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3남 2녀를 두었으니 장남 종화 차남 형화 삼남 대화가 있다. 옛말에 효자의 집안에서 충신을 찾는다고 하였는데 충신의 집안에서 효자가 나오는 것도 자명한 일이다. 이 공적비는 차남 형화가 주도하여 설립하게 되었으니 형화의 차남 연보는 나의 오랜 벗이다. 조부 죽교 선생의 생애와 공적에 대한 한글를 부탁하기에 여러 의사들의 행적과 전적을 참고하여 이 글을 짓는다. 후세에 이 비문을 읽는 사람들은 선생의 삶이 오롯이 민족의 독립에 이바지한 것에 옷깃을 여미며 경의를 표하고 아울러 귀감으로 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