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page


62page

듬해 2월 16일 화목교회 최대장로로 장립. 공은 특히 성품이 온유겸손하셨고 통찰력과 선견지명을 가진 자로서 과수종묘 종축 등 수종의 종자 개량에 성공 사회발전에 공헌하시며 약자 병자 병사자을 정성것 돌보았고 6.25 동란 중 순교자 엄주선 강도사의 시신을 엄주명 김상정 양재관 박도선 양원석씨 등과 3일간 노력 끝에 춘산에서 발견 경북 노회장으로 장례. 이같이 공의 일생은 교회와 민족 복흥을 위해 희생과 봉사의 생활로 일관하시다가 1968년 7월 15일 17시 소천 순교자의 유족과 당회원의 의견에 따라 순교자 묘소 고편에 교회장의로 장례. 그 고편에 부인 경비 여사를 쌍분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한복음 12장 24절)는 말씀같이 공의 후손 중에는 교회에 충성된 인물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공은 이미 가셨으나 그 훌륭한 신앙과 애국애족의 정신은 우리 역사와 교회 위에 영원히 빛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