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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 경술국치후 우리국토는 일본군국주의자에게 강점되어 기미년 3.1운동이 궐기되기까지 10년간 이 땅에는 무단정치와 세계에 유례가 없는 가혹한 식민지학정이 수행되어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민족생존마저 위압을 느껴 조국강토는 기식이 암암하였을때 이 고장 청년지사 조극환선생을 비롯한 25인 의사께서는 일제헌병과 경찰의 총검이 삼엄함에도 적수공권으로 생사를 초극하고 오직 국권의 회복과 민족자결의 대의를 위하여 태극기를 높이 들고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크게 외쳤고 그 뒤를 따른 수천 민중의 함성소리는 영암읍은 시장의 거리에서 구림은 보통학교에서 천지를 진동시켰다. 그러나 그후 의사들께서는 일경에 체포되어 갖은 악형과 수모를 겪으시고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과 대구복심법원에서 최종판결을 받고 복역하셨으나 이제는 다 고인이 되어 영원히 지하에 잠드셨다. 아아! 그분들은 국가민족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처해있던 위기에 이를 장구하기위하여 민중의 선각자로서 신명을 홍모에 붙이고 선봉에 섰던 것이다. 가다가 쓰러지는 한이 있을지라도 최후의 1인 최후의 일각까지 싸운 선구자로서의 기개는 만대에 찬연히 빛날것이요 이 고장의 영원한 자랑이라고 하겠다. 오늘 이곳 유서의 땅에 동아일보사와 영암군 3.1운동기념비건립위원회가 공동으로 이 비를 세워 3.1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선양하고 그 옛날 이 고장 청년들이었던 의사들의 영화같은 기개를 후인들에게 길이 전승하여 귀감이 되게하고 이 선열들의 유덕을 만대에 숭앙코자 이 비를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