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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독립운동 • 여성 3·1운동 61 7호’를 위반한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선 고받았다. 이후 8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고 수원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갖은 고문의 후유증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 해 4월 21일, 이선경은 풀려난 지 9일 만 에 수원에서 순국했다. 2012년 정부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조화벽, 개성에서 양양으로 만세운동을 잇다 경기도 개성에서도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조 화벽은 개성에 있던 호수돈여학교에 재학 중이었다. 그는 1895년 10월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상왕도리 에서 감리교 전도사였던 조영순(趙英珣)과 전미흠 (全美欽)의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부모의 독실한 신 앙생활 아래 자랐으며, 기독교계인 원산의 성경학교 와 루씨여학교(일명 원산여학교)를 졸업하고 호수돈 여학교에 진학해 공부하던 중이었다. 1919년 2월 28일 오화영(吳華英) 등 기독교계 목 사들을 통해 독립선언서가 개성에 전달되었다. 남감 리교 북부예배당 지하실 석탄저장소에 숨겨져 있던 독립선언서를 호수돈여고보 부속유치원 교사였 던 권애라(權愛羅)와 호수돈여고보 기숙사에 거주 중이 었던 예수교 전도사 어윤희(魚允姬), 신관빈(申寬彬) 등이 호수돈여고보 학생들에게 배포했다. 곧장 학생 17명은 만세운동 실행을 결의하고 학생들을 규합해 갔다. 80여 명의 학생들이 독립선언서에 연달아 이 정명학교 여학생들과 조화벽(앞줄 가운데, 독립기념관 제공) 강원 양양군 ‘만세고개 3·1운동유적기념비’ 앞의 독립운동 군상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2023년 12월 양양군 평생학습관 공원 사업지에 세 워진 조화벽 기념 동상(연합뉴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