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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한국 전라남도에서 찍은 사진』을 통해 본 일제의 의병 탄압 61 필자 정욱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친일반민족행위진 상규명위원회 조사관, 우송대학교 초빙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 등을  지냈으며, 현재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학술연구부 연구위원으로 재 직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 근대 유림의 굴절』(2023)과 다수의 논문이 있다.  맞이했다. 그들은 ‘폭도’가 아니라 ‘의병’이라 주장하며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했 지만, 일제는 철저히 그들을 폭도로 취급하여 강도죄나 폭동죄 같은 일반범죄를 적 용해 사형시켰다. 이를 통해 대외적으로 한국이 정치적 으로 혼란하지 않은 평온한 상태임을 국제사회에 보여 주는 동시에 의병 탄압의 정 당성을 확보하려 했다. 한편, 함께 체포되었던 양 방매는 남편이 사형당한 후 당시 19살의 어린 나이 로 인해 훈방되었다고 하며, 이후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여생을 금정면에서 은거했다고 한다. 양방매는 늦게나마 의병투쟁에 참여한 것을 인정받아 2005년 대한민국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심남 일 첩의 체포된 이후 행적은 자료의 한계로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양방매와 함께 석방되었을 것으로 본 다. 역설적으로 『한국 전라남도에서 찍은 사진』을 통 해 그녀들의 얼굴과 활동의 일면을 엿볼 수 있게 되 었다. 특히 심남일의 첩을 함께 기록하여 이름 모를 존재가 완전히 망각의 늪으로 빠지지 않고 기억하도 록 만들었다. 이는 의병운동사에 당당히 이름을 남 긴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을 물심양면 도와주고 희 생한 이름 모를 사람들[失名人]이 존재하였음을 되새 기게 해준다. 일제는 강무경의 아내 · 심남일의 첩 · 강 무경 아내의 동생으로 설명했지만, 의병에 대한 축 적된 연구 성과로 인해 현재 강무경의 아내는 양방 매, 강무경의 처남은 양성일(梁成一, 일명 梁龍 石)이 란 이름을 되찾았다. 아쉽게도 심남일의 첩으로 기 록된 여자는 이름을 상실한 채로 남아있다. 아이러 니하지만 이 자료로 인해 그녀에 대한 단서는 찾은 셈이다. 앞으로 사회과학적 · 역사적 방법론의 발전에 따라, 다양한 학문전공자의 시각에 따라 『한국 전라남도 에서 찍은 사진(韓 国 全羅南道での 写真)』에서 더 많 은 이야기와 정보를 찾아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나아가 이 자료를 통해 일본 궁내청에 아직 알려지 지 않은 한국 관련 자료가 다수 소장되었다는 점을 기억하고 조사 수집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졌으면 한 다. 전북 무주 나제통문 입구에 세워진 강무경 양방매 부부 사적비(국가 보훈부 제공) 1984년 6월 6일 94세  때 국립서울현충원에 있 는 남편 강무경의 묘를  찾은 양방매 여사(동아일 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