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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순국선열 • 황병길 선생 61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그 뒤 일본 경무당국은 그들의 앞잡이나 밀정 등을 총동원하여 황병길의 은신처를 찾 아 헤맸다. 결국 1920년 5월 말, 북간도 훈춘 현 토문사(土門寺) 북쪽 숲속에 있는 초막을 발견하고 포위망을 압축시켰다. 이날은 억수 같은 폭우가 내렸는데, 황병길은 칠흑 같은 어둠을 이용하여 포위망을 뚫고 어느 농가에 피신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의 몸은 이미 지칠대로 지치고 설상가상으로 급성폐렴까지 얻게 되었다. 병 세는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한편, 이같은 급 보를 비밀리에 전해 들은 부인 김숙경(金淑 卿)은 70리 머나먼 길을 허겁지겁 달려갔다. 그러나 깊은 산속에서 어찌할 도리가 없었 다. 죽음을 감지한 황병길은 유언을 남겼다. “우리나라가 독립을 쟁취할 때까지 굳세게 싸우시오.” 1920년 6월 1일, 나이 고작 35세였다. 너 무나 짧은 일생이었다. 그가 떠난지 어언 104년, 지금도 중국 연변의 훈춘지방에서는 그를 ‘항일영웅’으로 추앙하고 있지만, 아직 까지 국내에서는 아는 이가 드문 실정이다. 1992년 유해봉환, 국립묘지 안장 1992년 대한민국과 중국의 수교에 따라 유가족의 희망대로 훈춘 연통랍자(煙筒柆 子) 에 안장되었던 그의 유해를 조국으로 봉환했 다. 이 해 12월 10일 대전국립묘지(현재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국립대전현충원에 있는 황병길의 묘(국립대전현충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