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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열사는 1902년 12월 16일 충청남도 목천군 이동면 지령리(현주소 :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유관순 생가길 18-2)에서 아버지 유중권과 어머니 이소재의 3남2녀 중 둘째딸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이화학당 고등과 1학년인 유 열사는 3월 1일 파고다공원 3월5일 남대문역(현 서울역) 독립만세운동에 직접 참여하였다. 휴교령이 내려지자 고향으로 내려온 열사는 어른들과 독립만세운동을 협의하며 태극기를 손수 마들어 4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 3,000여 군중들에게 나누어주고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때 유 열사의 부모를 포함 1명이 순국하였고 30여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일본 헌병대에 주모자로 체포된 유 열사는 경성복심법원에서 3년형을 선고 받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어도 계속 독립만세를 부르다가 일제의 모진 고문으로 1920년 9월 28일 18세의 꽃다운 나이에 그토록 목마르게 기다리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순국하였다. 1920년 10월 2일 이화학당에서 유 열사의 시신을 인도하여 10월 14일 정동교회에서 김종옥 목사의 집례로 장례식을 거행한 후 이태원 공동묘지에 표석도 없이 안장되었다. 경성부가 이곳을 1935년부터 1936년 4월까지 망우리 공동묘지로 이장할때 유 열사 묘를 포함한 연고자가 없는 28,000여 분묘를 화장하여 이곳에 합장하고 위령비를 세웠다.
오늘 이곳에 3.1독립운동의 상징인 민족의 딸 유관순 열사 분묘 합장 표지비를 세운다.
2018년 9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