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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2025년 3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3월의 독립운동 16명을 선정했다. 불교 측은 2월 24~27일 문건 초 안에 동의한 한용운 등 2명이 날인했다. 그리고 2월 28일 밤 손병희 집에서 천도교 측 12명, 기독교 측 11명, 불교 측 1명 등 25명이 모여 3월 1일 명월관지 점에서 독립선언을 하고 조선총독부에 의견서를 제 출하기로 결의했다. 한편 2월 27일 이종일이 보성사 김홍규에게 신문 관 직공이 짠 활판으로 선언서를 인쇄하게 했다. 김 홍규의 지시를 받은 신영구가 오후 5시부터 11시경까지 21,000매를 인 쇄하여 이종일에게 전달했다. 천도 교 측이 전북 · 충북, 강원 · 함경, 황해, 평남 지역에, 기독교 측은 황해, 평 남, 평북, 함남, 경상, 전북 지역에 2 월 28일과 3월 1일 사이 선언서를 교부했다. 불교 측은 한용운이 수령 해 배포했다. 일본과 중국 상하이[上 海] 등 해외에도 문건이 전달되었다. 2월 초부터 김원벽 등 학생대표들 도 중등학교 학생들을 규합했고 민 족대표들과 교류를 지속했다. 이들 은 2월 25일~27일 회합에서 3월 1 일 독립운동 참가, 전문학교 중심의 독립운동 계획 등을 협의했다. 2월 28일 밤 김문진이 독립선언서 1,500 매를 승동예배당으로 가져왔다. 전 문학교와 중등학교 학생 십수 명이 선언서 100~300매씩을 교부받아 3 월 1일 새벽까지 시내 각처와 민가 에 배포했다. 외치고 부르짖고 싶었던 함성, 아 ~ 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 끊이지 않는 만세 소리 3월 1일 정오 이후 학생들과 군중들이 파고다공원 으로 집결했다. 민족대표들이 명월관지점인 태화관 에 모였다. 이종일은 식장 탁자에 인쇄한 독립선언 서 약 100매를 올려놓았다. 오후 2시 선언서 낭독을 민족대표 33인의 만세시위 협의장면을 그린 기록화(오마이뉴스 제공) 3·1운동 당시 덕수궁 앞의 만세 시위 광경(독립기념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