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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2024년 3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모연대장(募捐隊長)을 맡아 군자금을 모집하 였다. 이로써 이 해 10월 말 청산리독립전쟁 을 승리로 이끄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한편, 1920년 2월 훈춘에서 항일의용군을 무장시 켜 군무장으로서 함북 경원·온성 등 국경지 방을 습격하기도 하였다. 1920년 3월에는 북간도 합마당(蛤膜塘) 상 촌에서 홍범도(洪範圖) · 구춘선(具春先) · 이범 윤(李範允) 등 독립군 대표들과 만나 독립운 동 단체의 통합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또 한 국민의회 지부를 개칭한 훈춘한민회(韓民 會)의 경호부장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또 ‘급 진단(急進團)’을 조직 · 영도하면서 연해주 지 역에서 무기를 확보하는 데 노력하여 소총 1 백 3자루, 탄환 5천여 발, 군자금 85만 6천여 루불을 조달하기도 했다. 이후 동지들과 함께 국내로 진격하여 함북 고건원(古乾源), 용당(龍堂), 경흥 일대에서 일 본 통치기관을 습격하고 일본 밀정을 처단하 는 등 일제 통치 당국자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등 맹활약을 펼쳤다. 일제 당국에게는 ‘목의 가시’같은 존재, 오직 독립투쟁으로 일관 이처럼 황병길의 독립운동이 치열해지자 일본 영사관 측은 “모든 반일투쟁이 황병길 에게서 나오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며 “그는 독립운동의 중심인물이니 체포에 총력을 집 중하라”고 산하 경찰에 지시하기에 이르렀 다. 그는 일제 당국에게는 ‘목의 가시’ 같은  「혼춘에서 독립단이 대활동 황병길씨의 열렬 용감」 황병길의 맹렬한  활동을 보도한 『신한민보』 기사(국가보훈부 제공) 「황병길의 병사 보고의 건」 황병길의 병사 사실을 파악하 여 보고하는 일본 훈춘영사관 부영사의 비밀보고서(국사 편찬위원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