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page
60 2023년 11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초 광주고등보통학교(광주고보)·광주농업학 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을 중심으로 성진회 (醒進會)가 결성되었다. 성진회는 신사상 보 급과 연구, 식민지교육체제 반대 등을 실천 하고자 조직된 비밀결사였다. 장석천은 광주 청년회에 가입하여 성진회를 지도해 간 것 으로 보인다. 광주청년회는 1927년 2 · 3월 광주고보·광주농교 졸업생들을 축하하는 자 리를 마련했는데, 이를 주도하고 학생들에게 졸업 후에도 우리 민족을 위해 분투할 것을 격려하였다. 1927년 3월 경 성진회는 해산되었지만, 성진회 출신 재학생들을 중심으로 광주고 보·광주농교·사범학교에서는 신사상 연구를 위한 독서회가 조직되었다. 이 과정에서 전 남청년연맹 위원장이었던 장석천이 학생들 을 지도하며 독서회 결성을 후원하였다. 장석천은 1927년 10월 신간회 광주지회 가 창립되자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1928년 7월 전남지역 사회운동의 핵심적 역할을 담 당했던 강해석·지용수 등이 일제에 검거되 면서 그의 위상이 더욱 높아졌다. 강해석·지 용수 등의 검거 이후, 긴급 전남청년연맹 집 행위원회가 열렸는데 이때 임시집행부 의장 에 선출되었다. 그는 학생 독서회를 지도하 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신 간회 광주지회 간사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 는 또한 전국 규모의 비밀결사였던 조선공 산청년회(조선공청)의 전라도 책임자이기도 했다. 이런 배경에서 그의 활약으로 광주학 생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 있었다. 광주고보생들과 일본 학생들 충돌로 1차 광주학생운동 폭발 1929년 11월 3일 제1차 광주학생 시위운 동이 일어났다. 당시는 며칠 전 일어난 ‘나주 역 사건’으로 광주지역 한·일 학생들 간의 집 단적인 충돌로 치닫고 있던 상황이었다. 광 주고보생들은 명치절 기념식에 참석한 뒤 신 사참배를 거부하고 귀가하는 길에 일본인 중 학생들과 충돌하였다. 이 사태는 양측 학교 교사들이 나서고 경찰들이 출동하면서 해산 되었다. 학교로 돌아간 학생들은 선후책을 논의했 고, 그 자리에 참석한 전남청년연맹 학생부 책임자 장재성은 독서회 학생들을 통해 시 위운동을 지도했다. 광주고보·광주농교 학생 들은 교가와 운동가를 부르며 가두시위를 전 개하였다. 장작·곤봉·배트 등으로 무장한 시 위대는 광주중학교를 습격하고자 했지만, 일 본 경찰과 소방대의 강력한 저지에 무산되자 시위행진을 벌인 뒤에 해산했다. 조선총독부 경찰 당국은 주동학생에 대한 대규모 검거에 착수했다. 70여 명의 조선인 학생 중 60여 명 을 검사국에 송치했다. 이러한 대규모 검거 선풍은 한·일 학생뿐만 아니라 광주지역 사 회단체 인사들을 자극하여 제2차 시위운동 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