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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8일 거창군 위천면 남천리에서 정재필·이형준 등과 함께 위천 장날에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거사하기로 결정하고, 위천면·마리면·북상면 등지의 주민들을 규합, 장터에서 시위대열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선창하니, 시위군중이 일제히 화창하였다. 수백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만세시위를 계속하자 이에 당황한 일경들이 총검으로 무력 탄압을 자행하였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일군헌병주재소를 습격하며 활동하다가 피체되었다. 같은 해 5월 1일 부산지방법원 거창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언도받고 진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