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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해원의 때가 무르익었으니 천하의 영봉 지리산을 생사의 터로 삼아 동족상잔의 피어린 원한을 풀어 그 본연으로 돌아감이 옳거니. 여기 근본 법륜 화엄사 청정도량에 한 사람의 자취를 돌에 새겨 기리도록 함이라. 차일혁님은 일찌기 조국의 아픈 시련 가운데 태어나 그 시련에 몸을 바친 생애의 파란만장으로 다하였나니 소년시절 의에 목말라 빼앗긴 나라를 기어이 찾아내자 하여 중국땅으로 망명 그곳 중앙군 포병 대대장으로 혁명전사 김학철 등과 함께 항일전선에 참가하였다가 해방 뒤 돌아왔으니 이번에는 한국군 대위로 6.25사변에 참전한 다음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서남지구 전투경찰에 다시 한번 투신하여 토벌전을 지휘하였음이라. 그 동안 차일혁님은 작전상 사찰당우를 불태우라는 명령 앞에서도 불자의 신심과 문화유산에 대한 한없는 경의를 품고 그것들을 필사적으로 보전하여 오늘에 이르렀나니. 이곳 화엄사를 비롯하여 천은사 상계사와 금산사 백양사 선운사 그리고 덕유산 사찰들까지 젯더미를 면하기를 아슬아슬 하였음이라. 어디 그 뿐이랴 그 백척간두의 상황 중에 서로 이념을 달리하는 핏줄 하나라도 구출하자는 숭고한 인간애를 낱낱이 보였으며 전설적인 상대였던 이현상의 시신을 정중하게 장사 지내기도 하였거니와 조계종 통합종단 초대 종정 이효봉 대종사로부터 감사의 뜻을 받기도 하였던 바 새삼 그의 유덕을 길이 전하는 까닭을 이에 밝혀놓으니 지나는 길손이여 한 겨를 머물러 주소. 서산은 여기 있고 물은 먼데로 흘러감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