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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11월30일 일요일 6 (제227호) 관향조 종친회 밀성박씨충헌공파대 종회는 지난 21일(금요 일) 오후 7시 경남 밀양 시 하남읍 귀명리 소재 경모재에서정기총회를 갖고 경과 및 감사보고 를 원안접수하고 부의 안건으로 △2025년도 결산 승인의 건 △2026 년 예산 승인의 건 △임 원 선임에 따른 인준의 건 △규약 개정의 건 △ 기타토의 건을 상정 원 안처리했다. 2025년 주요 사업경 과를 보면 지난해 박기 종 회장 취임이후 경모 재를중수에가까운대대적인보수를하였다. 이과정에헌성금은줄을이어5천여만원이모금되 었다. 이는 신임 집행부에 거는 기대가 반영된 것으로 집행부는재능기부를통해비용을절감하여2천5백여 만원의 적은 돈으로 말끔하게 보수하면서 잉여금으로 재정을튼튼히하여이날회의에서도많은격려가이어 졌다. 이에더안정적이고현실적인대종회를운영하기위 해 일부 정관 개정안을 상정 처리했다.주요 요지는 사 무처를 신설하여 청년조직을 사무처에 넣음으로서 대 종회 조직에 힘을 실었다. 그리고 원로 분들의 연륜에 서 나온 지혜를 구하기 위해 원로회의를 신설했다. 그 리고이날상정된모든안건은만장일치로가결함으로 서새해집행부에서추진하는전자족보사업에도탄력 이붙을것으로전망된다. 그리고임기만료된박하원감사후임으로대종회전 총무이사박정열현종을후임감사로선출했다. 박기종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종원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드린다고 말하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짧은 인사말 로대신하면서말보다행동으로실천하는일관된의지 가돋보인다. 총회 직후에는 개좌를 열어 박명준 전회장(고문)을 직일로추대하여다음날봉행되는충헌공이하제향제 관을 선정하였다. 선정된 제관은 다음과 같다.(초·아· 종헌관,축관순) △충헌공-광수,순곤,인선,수각△정용장군-창근, 보균, 대룡, 호권 △판전교시사-수천, 수만, 수화, 수 익 △대제학공-용태, 상원, 인원, 용수 △정언공-용 화,석범,상소,호권 △참찬공-상홍,상웅,후준,주성 이상- 다음날인22일오전10시경모재후원에모셔진단소 에서의 제향은 두현 전 시조왕릉참봉, 11시에 봉행된 대제학공 이하 정언공, 참찬공 삼부자 제향은 정환 현 종이각각집례를맡았다. 충헌공은 밀성대군(언침)의 13世 支孫(시조 42世 孫)으로휘는척(陟),고려조에내부시승(內附侍丞)에 이르고 순충동덕찬화공신 삼중대광(純忠同德贊化功 臣 三重大匡)에 밀성군(密城君)으로 봉(封)해졌으며, 추은(推恩)으로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의 은총 이더하여지고시호(諡號)는충헌(忠憲)이다. 사패지(賜牌旨)를 하사받으니 옛 밀주(密州) 수산 현(守山縣:현밀양시하남읍)에있으며자손이세세로 계승하여녹을받아왔다. 충선왕(忠宣王)이태자일때정가신·민지등과함께 원(元)나라에가서삼년을지낼제공(公)도함께수행 하여김심과 더불어 심양(瀋陽)에서높이 뫼시는데힘 쓰고 충선왕을 모시고 돌아와서 즉위하였으나 왕유소 와송방용이 정사를 마음대로전횡하므로공(公)이의 논하여이들을주살하니이에비로소충선왕이국정을 전담하게되어조야가서로가까워지고태평하게되었 다. 아들은 정용장군(精勇將軍) 휘 성진(成進)이고 손 자는 판전교시사의 휘 원(原)으로 3대의 묘소가 실전 되어경모재후원에설단하였다. 경모재뒤편 선영에는대제학공휘 윤문(允文)의묘 소와공의넷째아들정언공(휘삼양,4남)제단,다섯째 아들참찬공(휘계양,5남)묘소가있다. 경모재는 밀성박씨 충헌공파대종회의 대표재사이 다. 경남 밀양시 수산읍 귀명리에 소재하고 있으며 경 모재의시원(始原)은귀명동옆사당동이다.고려조대 제학을 지낸 휘 윤문(允文)공이 공민왕 신축(辛丑)년 에 군부인김씨(郡夫人金氏)와 더불어 밀성(密成, 현 밀양)에서 병란(兵亂,홍건적의 난)을 피하던 중 별세 함에 귀명골에 장례(葬禮)을 치르고 재실(齋室)을 짓 고추모(追慕)하였다.그러나세월이흐름에따라수차 례 보수와 중수를 거쳐 1924년 7월 마지막 중수를 하였 다. 그러나 선산을 수호하고 세사(世祀)를 봉향(奉享) 함에재사와묘소의위치가떨어져종원들또한불편함 을제가하여서당골에서지금의귀명동으로이건을모 든종족(宗族)이합의하여1993년12월에착공하여199 4년 7월에 완공하였다.본재와 동·서재가 있고,관리사 를갖추니지금의웅장함을드러냈다. 한편이날행사에는청년들이조직적으로움직여제 례를 도왔으며, 멀리 곡성에서 온 여성종원 미영 현종 은 부엌일을 도맡아 함으로서 모든 행사가 크게 빛났 다. /박지희명예기자(경기가평군지부) 밀성박씨충헌공파대종회定總븡경모재시향봉행 경모재후원에서충헌공과 아들손자제향을마치고기념촬영을하고있다.왼쪽부터두현,수천,수만,수화,수익,광수,순곤, 인 선,수각,창근,보균,대룡,호권,직일명준,대종회장기종順 정관일부개정으로시대변화에맞추어,충헌공제단박광수현종초헌관헌작 박광수 초헌관으로 헌잔하고 있다. 광수 현종은 투철한 숭조 심으로 경기도본부 회장을 맡 고 있으며, 숭덕전 초헌관으로 헌작한바있다. 대구달성군하빈면묘리일명묘 골을충절의고향이라말한다. 조선시대 단종복위 운동을 펼치 다뜻을이루지못하고유명을달리 한 사육신의 위패를 봉안한 육신사 가자리하고있기때문이다.그러나 그보다 사육신중의 한 명인 박팽년 선생의 가문의 내력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알수있다. 사육신과 생육신을 논하기 전 이 들의 정치적인 영향이 누구로부터 나왔는지를 한번쯤 생각해보지 않 을수없다. 바로 한석당 박중림 선생으로부 터시작되었기때문이다. 그리고지난16일일요일오전10 시선생의높은학덕과충절을기리 기위한추모제향이대구달성군하 빈면 묘골 충의사(忠義祠)에서 충 정공파 주관으로 지역 유림등 50여 명이참례한가운데있었다. 이날제향은박종혁전회장의집 례로 충정공파종친회 박두규 회장 이 초헌관을,교리공파종친회 박종 용 회장이 아헌관,수찬공파종친회 박정근 회장이 종헌관으로 헌작하 였으며, 대축은 박성규 전 회장(칠 곡향교 원임전교), 기타 내외집사 는충정공후손들이각각맡았다. 한석당 박중림 선생은 선생은 천 성이 순효(純孝)하여 모친의 병환 에손가락을끊어피를드리고하늘 에 기도(祈禱)하였으며, 상(喪)을 당하여는3년을시묘(侍墓)하였다. 1417년(태종17)에 생원시에 합 격하고, 1423년 문과에 제2인으로 발탁(拔擢)되어 인수부승(仁壽府 丞), 집현전 수찬, 시강원(侍講院) 보덕(輔德)과 사간원사간(司諫院 司諫),전라도·경기도 관찰사,1453 년병조와호조의참판을거쳐수문 전대제학(修文殿大提學)이 되었 다. 하루는 왕이 대신 황보인과 김종 서, 정분을 불러 대사헌 될 사람을 하문(下問)하니 이들은 하나같이 뷺박모가 심장(深長)하고 분잡(紛 雜)한 것을 즐기지 않으니 가히 쓸 만합니다.뷻하니 왕이 옳게 여겨 드 디어선생을대사헌에임명하였다. 1454년(단종2) 예문관 대제학을 거쳐 공조판서에 승진하여 집현전 제학을 겸임하고 이어서 이조판서 에배명되었다. 집현전은 학자양성과 학문연구 를 위한 기관으로 왕과 신하가 경서 와사서를강론하는경연을하여국 왕이수양을쌓도록하여올바른정 치를 할 수 있도록 했고 왕이 될 세 자를 교육하는 서연을 하는 곳으로 세종대왕은 당시 선생의 아들 팽년 을비롯한성삼문하위지등을상시 로불러시강하게하고이들의정신 과학문을높이샀다. 세종과 문종의 유지 또한 자연스 레 선생에게 이어지고 아들 팽년과 성삼문하위지등은선생의높은학 문에동조하지않을수없었을것이 다. 큰아들 팽년은 형조 참판을 역임 하고 후에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시 호는 충정(忠正)이다. 둘째 인년 (引年)은 교리, 셋째 기년(耆年)은 수찬으로 호당에 뽑히고 넷째 대년 (大年)은 박사(博士), 다섯째 영년 (永年)은검열(檢閱)이다. 순천박씨문민공(휘중림)추향봉행 충정공파주관,사육신의정신적스승 한석당 박중림 선생의 추모제향이 지난 16일 봉행된 가운데 참례한 제관이 한자리 에 모였다. 왼쪽부터 알자 학규, 원규 순천박씨중앙종친회장, 두규, 종용, 정근, 성 규,종삼順 지난 19일 음성박씨 관 조박서장군제향에이어 봉행된 문하시랑공 시향 은 충민공파(회장 근태) 주관으로 봉행된 가운데 근태회장이초헌관을아 헌관에는윤권,종헌관은 용업, 축관 은기 형종이 각각맡았다. 문하시랑 휘 문길 공은 아들 순(淳)과 정(淨) 을두었다. 장자 순은 함흥차사로 유명하다. 예부터 심부 름을 간 사람이 돌아오지 않는 것을 가리켜 ‘함 흥차사(咸興差使)’라고 한다. 이것은 조선 초에 생긴 말로 태조 이성계가 왕위 계승권을 둘러싼 이른바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지켜보며 극도로 상심하여 고향인 함흥으로 내려가 버린 뒤 아들 태종 이방원이 아버지의 마음을 돌리려 누차 사 자(使者)를 보내어 귀경을 요청하였으나 이성 계는 돌아오지 않고 아들이 보낸 사신들을 죽여 버렸다. 부자간의 싸움으로 조선의 신하들이 억 울하게죽어갔다. 이때 순(淳)이 자청하여 함흥으로 가 새끼 딸 린송아지로혈육의정은 땔 수 가 없다는 재치를 발휘했다.그러나 돌아오는 길은 훗날을 기약하 지못했다. 태조는 옛 친구와의 우의를 생각하여 차마 죽 일수없어시간을끌었다.그러다순(淳)이용흥 강을 건너가 추격이 어려울 것을 짐작하여 이르 기를 뷺이미 강을 건넜거든 쫓지 말라뷻고 한 것이 다.그러나순은도중에병이나서시간을지체하 다가 나루터에서 추격자들에게 붙잡혀 죽임을 당한다. 조선초마지막함흥차사의주인공이되 었던것이다. 그 후 태종은 순에게 판중추부사에 추증하고 자손도벼슬에등용했다.남편의부음을듣고자 결한 부인 임씨에게는 열녀의 정문(旌門)을 세 우게 했다. 순(淳)의 시호는 충민(忠 愍)으로 충 민공파(忠愍公派)의파조(派祖)가된다.그리고 순(淳)의 아우 정(淨)은 조선 태종 때 세자빈객, 예문관 직제학,예조판서를 거쳐 좌찬성에 이르 렀으며, 시호는 문익(文翼)으로 문익공파(文翼 公派)의파조(派祖)이다. 한편이날제향후근태회장은선영관리는충 민공파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부디 많이 참 석하여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제례 문화를 후손 들에게넘겨줄수있도록하여달라며참여를당 부했다. 음성박씨문하시랑(휘문길)시향봉 행 제례문화는후손에게물려줄전통으로참여하며함께해야 박근태회장 밀성박씨충헌공파대종회는지난 23일추향을봉행하고참례한 종원들이 잘가꾸어진대제학공묘원에서기념촬영을하고있다. 묘원은박영국현종이 자청하여7년전부터상주하며매일아침묘역의잡초를뽑는등시묘에가까운정성으로 관리하면서보기 드문사례를남기고있어화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