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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병합을 일본 제국주의의 자본주의적 침략으로 규정한 그는 한국의 독립 운동과 민중 운동을 적극 지지하였다. 1911년에는 〈조선의 독립운동에 경의를 표함〉이라는 글로 독립 운동 혐의로 일본 경찰의 조사를 받는다. 1919년 재일 조선 유학생들이 선포한 2.8 독립선언의 주역인 최팔용, 송계백 등 조선청년독립단의 변호를 맡았다. 또 그는 일본 황궁에 폭탄을 투척한 추강 김지섭 선생의 변호와 박열 의사와 그의 아내 金子文子(가네코 후미코) 여사를 변호하신 분이다. 단순 변호 이외에 옥중에서 순국하신 카네코여사의 시신을 한국으로 몰래 송환시키신 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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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시 오미리 풍산김씨 영감댁, 김재봉선생 어록비, 학암고택, 추가 김지섭선생 묘비, 김응섭선생 고가, 풍산김씨 종택, 김만수선생 생가지비,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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