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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양구군 양구읍 양구군청 오른쪽에 있는 구 도서관을 찾아왔다. 찾을 수 없어서 양구군청에 문의하였더니 양구군 민원실의 담당공무원이 직접 안내해 주었다. GPS 상의 주소는 강원 양구군 양구읍 하리 19-1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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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6월 26일 백범 김구선생은 경교장에서 당시 육군 소위였던 안두희가 쏜 권총 실탄에 가슴과 머리에 맞아 사망하게 되었다. 그후 안두희는 종신형을 언도 받았으나 3달만에 15년으로 감형 되었고, 6.25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형 집행정지로 풀려나 육군에 다시 복직되어 소령으로 예편하면서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하리에서 군납공장(두부와 콩나물)을 운영하면서 은둔생활을 하게 되었다. 평소 김 구선생님을 흠모하면서 살아왔던 곽태영은 암살범 안두희를 응징할 계획을 세우고 양구읍 하리의 안두희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행상을 하면서 기회를 엿보다가 1965년 12월 22일 기회를 잡고 집 앞 마당에서 세수를 하려 던 안두희에게 "김구선생을 살해한 원수야!" 하고 외치고 달려가 격투를 벌이면서 칼로 목과 배를 찔렀으나 공장의 종업원들에게 잡히어 미수로 끝나게 되었다. 곽태영은 재판 중에도 계속 "안두희의 응징에는 후회가 없다"고 진술 하였으며 전국에서 6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애국청년 곽태영의 석방을 탄원 하였고, 곽태영의 부친은 아들의 행동이 자랑 스럽다며 동네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이러한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노력으로 곽태영은 사건발생 8개월 만인 1966년 7월 30일 서울 고등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석방되었다. 그러던 중 청년 곽태영의 의로운 거사에 감명받은 약방 운영을 하던 홍천의 남궁경씨가 북방에서부터 바윗돌을 수레에 실어 오자 양구사람 홍주범 선생께서 혼쾌히 땅을 내줬고 ‘민족정기소생협의회’ 33인이 출연금을 보태 안두희 응징 기념비와 백범 선생님의 기념비가 나란히 건립되었다. 출처 : 양구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