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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일제의 강권적인 식민지통치에 항거 1919년 3.1독립만세운동 시기에 광명지역의 첫 봉화를 올려 민족혼을 빛낸 곳이다. 이 고장의 3.1운동은 3월 27일 당시 시흥군 서면 소하리 거주 이정석이 독립운동을 선동한 끝에 이튿날 일본 경찰에게 강제연행되어 노온사리 경찰주재소에 구금되면서부터 비롯되었다. 이정석의 아버지 이종원은 아들의 구금사실을 기독교인 최호천에게 알림으로서 당시 배재고보 학생 윤의병 농민 류지호 최정성 김인한 최주환 김거봉등은 모임을 가진뒤 이들의 주도하에 구금자를 구출하고 민족독립의 염원을 밝히기 위하여 이백여명의 주민이 참여한 가둔데 일대 시위운동을 일으켰다. 시위대들은 대한독립만세를 크게 외치며 노온사리 경찰주재소를 에워싸고 증파된 일본 경찰에 의하여 모두 체포되었다. 독립만세운동의 주동자들은 치안유지법위반 또는 중한 구금자 탈취 미수죄를 적용 최고 4년에서 1년 6개월의 징역형과 함께 벌금형을 언도받았다. 그후 광복된 조국에서 이들에게 건국훈장 애족장및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