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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학남 김대규 의사 기념비 김대규(金大圭) 의사는 1878년 11월 9일 경북 영양군 입암면 교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판관공(判官公) 휘 계권(孫權)의 15대손이며 눌재공(訥齋公) 휘 생명(生溟)의 12대손으로서 호는 학남(鶴南)이다. 의사는 기골이 장대하고 지조가 강직했으며 일찍이 유학(儒學)에 전념하다가 국운이 기울어가던 1905년에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자 청송군과 영양군에서 의병을 모아 도포장(都鉋將)으로서 주왕산과 청량산을 무대로 일본군과 접전하였다. 이듬해 4월에 청송군 진보면 오누지(못)전투에서 왜적 무등(武騰)부대와 맞서 파천면 어천리까지 추격하여 수백 명의 적을 격파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이때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어 병력을 수습하고 군사를 증강하여 5월에는 을진군 죽변면과 칠곡군 왜관읍 등지에서 왜군과 싸웠고 10월에는 이곳 영양군 입암면 병옥동에서 적군을 맞아 접전을 하다가 적의 강력한 세력으로 포위를 당하자 한밤에 차가운 강물 속으로 병력을 투입 15리나 거슬러 올라가 연당동, 대천동으로 이동 집결시키는데 성공하였다. 1907년 태백산과 일월산 일원의 준령에서 적과 맞서 악전고투하다가 이해 10월 21일 안동군 임동면 대곡동 장갈령 전투에서 중과부적으로 한을 품은 채 장렬히 전사하니 이때 장군은 30세 혈기 왕성한 청년이었으니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977년 12월 대한민국 건국훈장 국민장 제476호로 추서되었다. 1993년 6월 16일 영양군 유림회에서 장군의 공적을 기려 이 비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