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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 단암 조정인은 1872년 1월 14일 나주읍 서부면 명당(장정동)에서 조삼원의 3남으로 태어났고 1909년 1월 18일 대구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순절하니 때에 공의 나이 37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힘 또한 장사여서 아우 정용과 더불어 명성이 우너근에 떨치었다. 대지주로서의 부력을 배경으로 하여 군량미 조달과 비축을 목적으로 짐짓 미곡상을 위장 경영하기도 하였다. 때에 국운은 날로 기울고 일.청 일.로 양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일본의 오만불손 방자한 행동 또한 날로 자심하여 드디어 1905년에는 소위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외교 군사등 국권의 태반을 강탈하니 나라 빼앗긴 통분에 온 나라가 들끓었다. 1907년 9월 장성 기삼연은 호남창의맹소를 차려 총대장으로 추대되자 공은 그들과 서로 정보를 교환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