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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과 정동의 변화
정동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이 있었다는 데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개항 이후 이곳에 각국 공사관들이 들어서고, 덕수궁이 대한제국의 정궁으로 사용되면서 정치·외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덕수궁은 대한문을 정문으로 한 중심 영역, 중명전 영역과 선원전 영역, 그리고 남쪽, 동쪽, 북쪽에 궐외 각사 영역을 갖추었다. 그러나 고종이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난 후 덕수궁은 규모가 점차 축소되었고, 1933년 공원으로 모습이 바뀌어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덕수궁과 정동 축소 모형
1910년을 기준으로 재현하였다. 덕수궁의 건물은 「경운궁 중건 배치도」 (1907년경) '덕수궁 평면도 (1910년경)를 비교하여 배치하였으며, 정동의 기타 건물의 배치는 당시 외국공사관 배치도 및 「경성지도』(1930년경)를 참조하였다. 일부 현재 남아있는 건물들은 정동 일대의 항공사진을 참조하여 배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