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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독립운동 • 한글날 제정 59 한글 창제일을 기 념하자고 제안한 다. 『조선일보』는 왜 이날 사설에서 한글 창제일을 기 념하자고 했을까? “이달에 임금이 친 히 언문 28자를 지 었는데 … 이것을 훈민정음이라고 일 렀다”라는 『세종실 록』(1443.12.30) 의 기록에 근거하면 이때가 한글을 창제한 지 8회갑 (480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이다. 실록의 날짜가 음 력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1443년 12월 1일을 양 력으로 환산한 1월 6일을 한글 창제 기념일로 제안 한 것이다. 사설에서는 한글이 세계적 문화를 흡수함과 간편 영리함에서 다른 나라의 글자와 비교할 수 없을 만 큼 탁월함을 강조하면서, 한글을 “만세불후의 대공 업”으로 찬양하였다. “매년 이날로 우리 문화의 대기 념일이라 하는 것”이라는 제안은 한글의 우수성에 대한 찬양과 연결된다. 한글 창제 기념일은 탁월한 한글을 찬양하며 민족적 자부심을 고양하는 날이 되 는 것이다. 이처럼 한글 창제 기념일을 정하려는 움 직임은 대중적인 언어 문화운동의 시작을 예고한 것 으로 봐야 할 것이다. 주시경의 제자들이 결성한 조선어연구회는 1924 년 2월 1일에 한글 창제 기념식을 치렀다. 조선어 연 구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끼리 모인 소박한 기념식이 었지만, 합법적으로 우리 민족의 우월성을 과 시할 수 있는 기회였기에, 언론도 관심을 보였다. 『동아일 보』(1924.2.1)는 조선어연구회가 휘문고등보통학교 에서 기념식을 연다는 소식을 전하며, “그 기념식을 음력 12월 27일로 정하여 행하게 된 것은 처음으로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조하시기는 즉위 25년 에 마쳤으나 반포하시기는 동 27년이었으므로, 27 년이라는 27의 의미를 취하여 27일에 행하기로 한 것이라더라”라고 기념일을 2월 1일에 연 이유를 밝 혔다. 2월 1일은 음력 12월 27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날이었던 것이다. 『세종실록』에는 ‘이달’, 즉 12월에 한글을 창제했다는 것만 기록되었기에 그 일자를 임 의로 12월의 첫날로 정하거나 12월의 27일로 정했 던 것이다. 조선어연구회 초대 간사였던 휘문고보 조선어 교 사 이병기는 그의 일기에서 1924년 한글 창제 기념 일의 풍경을 상세히 기록했다. 조선어학회 간행 『한글』 창간호 (1932.5.1)   『한글』 제4권 3호(통권 33호, 1935)에 실린 「한글 마춤법 통일 안」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