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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민족이 유하면 국가가 유하고, 국가가 유하면 충이 유하여야 함은 만고불이의 도다. 시고로 국가는 충으로써 흥하고 불충으로써 망하나니 차는 고금을 탕하며 역사가 증명하는 바라. 아국의 정세로써 논지하면 자삼국 이래로 인국왜적의 침략이 간다유지러니 중고 임진란에 지하여 대거 침입함에 아국의 전토가 기히 왜적의 수중에 개입하려다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충으로 인하여 국가가 부흥하고 근고 경술란에 급하여는 아 국토와 민족이 왜적에게 저제됨은 매국노 이완용 도배의 불충으로 인하여 국가의 패망이 않이라하랴. 후 기미년 3월 1일 거국적 조국독립운동이 폭발됨으로부터 을유년에 지하여 광복을 마지함도 역시 모든 애국의사의 충성으로 인하여 천인 공히 감응함이 엇지 그 충을 ○양치 않이하랴. 오즉 본면 7의사는 당년 20세 내외의 서생으로서 유도의 정의에 노숙한 백선생 중기의 문에서 수업 중 의거를 수창하여 조국광복의 대의를 면민에게 선포하고 국기를 각지하고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전면적 시위행진을 행하다가 왜병에게 체포 투옥되여 수월간의 가혹한 고문과 악형에 처하여 기지 사경하였을뿐 않이라 유시로 왜적 감시하에 거수 투족의 자유를 행하자 못하면서 ○ 26년간의 백척불굴의 투쟁을 절속하였으니 여기한 충은 족히 민족정신의 시범이 되며 유충 유창은 고금의 통전이라. 면민 등은 부감묵시고로 공의 제발하여 이 기념비를 건립하여 영세불망의 위국충의를 표함 단기 4299년 병오 4월 일 옥룡면 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