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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순의사 동상
윤희순의사는 1860년 서울에서 출생하였고, 16세에 춘천시 남면 발산리 항골에 거주하는 류제원과 결혼하여 춘천으로 이거하였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일제의 침략과 내정간섭에 항거하여 전국각지에서 항일구국운동이 전개되었다. 윤희순의사는 시아버지인 류홍석이 춘천의병으로 출정하자 자신도 적극적으로 의병을 돕기위해 마을 부녀자들과 군량을 지원하고, [안사람 의병가],[병정의 노래] 등을 지어 의병의 사기를 진작시켰다. 1907년 정미의병이 의거하자 윤희순 의사는 군자금을 모아 의병을 돕는 한편, 화약과 탄환을 만들거나 군사훈련에 동참하는 등 적극적으로 항일 의병항쟁에 참여하였다. 1910년 나라가 일제에 병탄되자 윤희순 의사의 가족은 중국 서간도로 이주하여 국권회복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였다. 특히 동창학교의 분교인 노학당(老學堂)을 설립하여 50여명의 항일 투쟁 인재를 양성하였고, 중국 일대에 흩어진 동지들을 모아 조선독립단및 가족부대를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35년 아들 류돈상이 일제에 체포되어 고문으로 순국하자 윤희순여사는 슬픔을 이기지못하고 76세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아들, 손자 등이 선대의 유훈을 이어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될 때까지 4대에 걸쳐 60여년을 국가와 민족을 위한 항일 투쟁에 헌신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의병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헌신하였던 윤희순여사의 숭고한 애국애족정신을 기리며 널리 선양하고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일제강점의 역사를 가르치기 위해 1990년 11월 7일 이 동상을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