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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을 평할에 있어 자신을 돌보지않고 옳은 일에 힘쓴 이를 으뜸으로 치는데 여기 봉선사에 그런 분이 계셨으니 그 분이 바로 지월당 순재화상이시다. 화상께서는 서기 1891년 신묘 6월 3일 서울 진고개에서 부 이수달 모 길보구 사이에 태어나시니 본관은 전주요 아명은 순재이시다. 화상께서는 아직 어리실때 그 부모님들이 봉선사 하촌으로 이사오시니 그것이 계기가 되었던지 서기 1905년 봉선사로 입산하셨다가 5년뒤인 1910 해운당 박양극화상에 의해 득도하셨다. 이때 화상의 나이 20이요 법명은 속명을 그대로 두었다. 그후 화상의 상이 온화하시고 공정하심이 알려져서 주로 사유토지의 추수관리등 어려운 일을 도맡아 보시게 되었으나 항상 말씀이 없으시고 사색이 깊으셨다 더구나 1919년 서울에서 일어난 3.1운동은 화상의 마음을 아프게하였다. 때 마침 서울에 유학중이던 태허당 성암 화상의 귀향으로 전후사정을 알게된 화상은 분연히 일어나 만세운동을 일으키시니 이것이 이 지역 항일운동의 기폭제이기도 하였다. 이제 정부관리 문서중에서 발견된 이 사건의 초반 판결문의 일부를 소개하므로써 당시의 상황 설명에 대신한다. 판결문 경기도 양주군 진접면 부평리 중 이순재 당29세 경성부 창성동 177번지 약종상 김석로 경기도 양주군 진접면 부평리 중 김성암 동도 동향 동면 동리 중 강완수 당24세 위 출판법 위반 피고사건에 대하여 판결함은 다음과 같다. 주문 피고 이순재 김석로를 각각 1년6월에 피고 김성암을 징역 1년 2월에 피고 강완수를 징역 1년에 처한다. 이유 피고 이순재 김석로 김성암은 전부터 조선민족의 독립을 희망하는 자 인바 앞서 손병희등이 조선민족독립선언을 발표하고 시위운동을 하였음을 전해 듣고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