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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2023년 11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이달의 순국선열 일본인 교사 횡포에 대항하다 고보 퇴학 장석천은 1903년 전남 완도군에서 10여 리 정도 떨어진 조그만 섬인 신지도에서 태 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장인오(張仁吾)로 지 주였으며, 위로는 장석지(張錫之)·장석태(張 錫泰) 두 형이 있었다. 큰 형은 아버지의 가업 을 이어 받았고, 작은 형은 경성고등공업학 교를 졸업한 뒤에 1924년 조선총독부의 토 목기사가 되었다. 초등교육을 받은 뒤, 1918년경 서울로 올 라가 중앙고등보통학교로 진학하였다. 중앙 고보에 다니면서 식민지인으로 받아야만 하 는 차별과 인격적 모멸감에 반일의식이 형성 되기 시작했다. 중앙고보에 ‘호랑이’라고 불린 일본인 체육 교사가 있었는데, 그는 수업시간 에 학생들을 별다른 이유 없이 괴롭히곤 했 다. 이에 분함을 참지 못한 장석천은 그 교사 를 응징하고 말았다. 이후 그는 더 이상 중앙 핵심공적 1927년 3월부터 광주의  학생비밀결사인 성진회(醒 進會)와 독서회를 주도했 다. 1929년 11월 광주학 생 대시위를 발발케한 뒤  12월에 주모자로 체포되 어 광주형무소에서 복역했 다. 출옥후 노동운동에 투 신, 항일소요를 모의하다 가 1932년 말 다시 체포되 어 옥고를 치렀다. 주요약력 ● 1903년 2월 25일 전남 완도군 신지도 출생 ● 1927년 광주 학생비밀결사 성진회 · 독서회 주도 ● 1931년 6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 선고, 광주형무소 복역  ● 1932년 1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2년 선고,      서대문 · 대전형무소 복역 ● 1935년 10월 18일 병보석 출옥 후 순국 ■ 건국훈장 애국장 장석천(張錫天) 선생 전남청년연맹 위원장, 신간회 상무간사 조선공청 전라도 책임자 등 역임 장석천 선생은 일제강점기(대일항쟁기) 당시 전 남청년연맹 상무집행위원장, 신간회 상무간사로  1929년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학생투쟁지도본 부를 결성했다. 이후 광주학생운동의 불길을 한민 족 독립운동의 일대 전환기로 만들고자 신간회와  협력하여 학생운동을 경성(서울)과 전국에 확산시 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글 편집부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전국학생운동으로 발전시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