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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일수 노공 명우 구국기적
공의 본관은 교하요 휘는 명우 자는 월성 호는 일수이다. 천은당 문광공 휘 사진의 16세손 전 사세 삼봉망위의 10세손 휘 병완의 장남으로서 서기 1900년 경자 윤 8월 5일 부여군 규암면 합송리에서 출생하다. 위인이 총명 강직 비범 출중하더니 16세 시 공주영명학교에서 수학 중에는 망국의 한을 품고 학생 동지들에게 민족사상을 고취시키는 일방 항일구국투쟁의 여성 대표적 인물인 유관순 양과 연락하여 기미 3.1운동이 봉기하자 공은 혈서로서 국권회복을 맹세하는 등 제1선에서 활약하다가 왜경에게 체포되어 징역 8월에 처형 공주형무소에서 복역 중 신병으로 가출옥하였으니 이것이 세칭 영명학교 학생 18인 만세사건이다. 기후 배재고보에 입학 무산학생으로 조직된 고학생 "갈톱"에 입회 회장에 추대되어 독립운동에 앞장섯고 연희전문학교에 진학 독립운동을 계속하였으나 왜경의 감시로 부득기 중퇴하고